[HQ!! 츳키른] 달의 앞면 ▒ 24
집중이 되지 않아도 너무 안 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계속 후타쿠치 상과 함께 있을걸.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수족관으로 돌아갈까? 알바하고 있는 후타쿠치 상 앞으로 다가가서 좀 더 곁에 있고 싶었다 말을 해볼까? 아냐, 이건 너무 제멋대로인 것 같아. 머리를 긁적이다 핸드폰 화면을 멍하니 바라본다. 헝클어진 머리,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있는 두 눈, 아무래도 오늘 수업은 틀린 것 같다. 이럴 바엔 해선 안 될 일인 것은 알지만... 하고 강단 쪽을 바라본다. 타이밍을 재다가 강의에 집중하신 교수님의 눈이 컴퓨터로 향했을 때 화장실을 가는 척 교실 밖으로 빠져나왔다.
휴- 한숨을 내쉬며 복도를 향해 걷는데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이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학관에 있을 리 없는 사람이지만 저 독특한 분홍 머리를 잘못 봤을 리 없다 싶어 조심스레 다가가 어깨를 살짝 친다. 혹시라도 기억을 못 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뒤를 돌아본 하나마키 상이 "오랜만이네?" 하고 입을 연다. 다행히도 나를 기억하는 눈치였다. 하긴 오이카와 상이 내게 하나마키 상 얘기를 해줬는데 반대로 얘기를 안 했을 리 없지, 하고 옅은 미소가 흘러나온다.
“수업 끝나고 나가는 거야?”
“아, 네, 아니, 끝나고는 아니지만.”
“뭐야 그게. 끝난 거면 끝난 거고 아니면 아닌 거지 애매하게 답하고 말이야.”
핀잔을 주면서 휘파람을 부는 하나마키 상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그러는 하나마키 상은요, 하는 질문이 입 안에서 맴돈다. 그러다 문득 든 의문을 입 밖으로 내뱉는다.
"저기, 하나마키상-“
"응?“
"기계과 아니에요?“
"어. 근데 그게 뭐?“
"...아니, 왜 여기 계신가 싶어서요. 제가 잘못 알고 있는걸지도 모르지만... 기계과면 공학관이나 창의관 쪽에서 수업 많이 듣지 않던가요?"
그 말에 멀뚱히 날 바라보던 하나마키상이 "일반화학 재수강이라 온 건데?" 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말한다.
"평소에는 열심히 듣는 편인데 오늘은 몸이 찌뿌둥해서 잠깐 나와 버렸지만.“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될 말을 덧붙이는 하나마키상의 말에 나도 모르게 핏- 하고 웃음이 나온다. 나보고는 애매하게 답을 한다 핀잔을 줬으면서 정작 자신도 수업을 듣다 도중에 나온 거잖아? 근데 그 변명도 웃기고.
"뭐야, 그 반응?“
"아니 아니, 비웃은거 아니에요. 단지 잠깐 나왔다는 말이 재밌어서요.“
"시시하긴. 재밌는 것도 참 많다."
짤막하긴 하지만 대답을 계속 이어나가는 하나마키 상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야기를 더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하나마키 상, 이제 뭐하실 거 에요?" 하고 묻는다.
"글쎄. 아직 점심을 안 먹었으니깐 밥이나 먹을까 싶은데. 왜?“
고개를 까닥이며 날 바라보는 하나마키 상에게 "마침 잘 됐네요, 저도 아직이라." 하고 대답한다.
"그래? 그럼 같이 먹으러가던가."
어디로 갈지 정하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학식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하나마키 상을 따라 걷는다. 식단표를 보며 어떤 것을 먹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눈앞에 식권이 쑥 하고 내밀어진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하나마키 상을 바라보는데 "내가 살게." 하며 식판까지 챙겨준다. 그다지 말을 많이 해보지 않았던 사이인데다 마이페이스인 느낌이 강하다 생각했는데 의외로 사람을 잘 챙기는 것 같다. 그래서 오이카와 상이 하나마키 상 얘기를 했던 걸까, 싶기도 하고.
"잘 먹겠습니다." 하고 합장하듯 손을 마주친 하나마키 상이 식사를 시작한다. 나 역시 그런 하나마키 상을 한 번 바라본 뒤 음식을 먹기 시작한다. 대화 주제로 이어나갈 것이 없을까 싶어 고민하다가 "하나마키 상, 좋아하는 음식 같은 거 있어요?" 하고 묻는다. 그 말에 국그릇을 들고 후루룩 마시던 하나마키상이 "슈크림-" 하고 단답을 내린다.
"의외네요.“
"의외라니 뭐가.“
"단 것 별로 안 좋아하실 것 같았는데."
"그렇게 말하는 너야말로 단 것을 좋아하잖아."
그 말에 에-? 하고 새삼스레 놀란다.
"알고 계셨어요?“
"뭘? 아, 네가 딸기 쇼트케이크 좋아하는 거?“
콕 집어서 딸기 쇼트케이크라 얘기하는 것을 보니 오이카와 상이 말한 건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는데 "지나가다 봤었어. 케이크 먹는 거." 하고 말한다.
"하두 맛있게 먹길래 얼마 뒤에 나도 가서 먹어봤거든. 맛있더라고.“
아무렇지 않은 말투로 얘기를 이어나가는 하나마키 상에게 "맛있게 드셨다니 제 기분이 다 좋네요." 하고 말한다. 그러다 뭔가 엉뚱한 대답인가 싶어 "제가 사드린 것도 아니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웃기지만요." 하고 말을 덧붙인다.
그 말에 "흐음-" 하고 뭔가 생각하는 듯 한 하나마키 상을 바라본다.
왜 저러는 것일까, 내가 말을 잘못했나, 별의별 생각이 왔다갔다 하는데 "너, 생각보다 귀여운 구석이 있네." 라는 말에 정신이 확 든다.
"...네?“
"오늘 만났을 때 부터 든 생각인데 오이카와가 왜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는지 좀 알 것 같다. 메일 주소랑 핸드폰 번호 알려줄래? 단 것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앞으로 자주 만나자고.“
내 앞으로 핸드폰을 내밀며 '뭐 해, 어서 번호 찍어줘?' 하고 재촉하는 듯 한 하나마키상의 표정에 나도 모르게 번호와 메일 주소를 찍어 돌려준다.
"지금 전화 걸 테니깐 이 번호 저장해 놓으면 돼. 오늘은 내가 약속이 있어서 못 가지만 다음에 슈크림 맛있는 곳 데려가 줄 테니 먹으러 가자고.“
학식을 다 먹고 나온 뒤 하나마키 상과 헤어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실험까지 남은 시간을 뭘 하고 보낼까 고민하다 중간에 나와 버린 화학 수업이 떠올라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음을 다잡고 강의 자료에 집중을 해보는데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아무래도 수업을 들었어야 했나보다 싶어 수업 도중에 나왔던 자신의 경솔함을 탓해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어차피 수업 시간에 앉아 있어봤자 다른 생각 때문에 집중도 못 했을 테고, 수업 도중에 나오지 않았다면 하나마키상도 못 만났을 거니깐... 하고 자신을 다독이며 다시금 강의 자료에 집중을 한다.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을 강의 자료에 표시해 놓고 도서관 내의 일반화학 책 한 권을 꺼내와 그 부분에 관련된 내용을 두세번 읽다보니 다행히도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면 오이카와 상에게 물어볼까, 했었는데 그런 수고는 덜은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복습이라면 복습이라 할 수 있는 공부를 마치고 시계를 보니 잘못하다간 실험 수업에 늦을 만큼 시간이 흘러있었다. 언제 이렇게 정신이 팔렸던 걸까, 하고 재빨리 가방을 싸 도서관에서 뛰어나온다.
다행히 실험 시간에는 늦지 않았지만, 간단한 실험이라 빨리 끝날 줄 알았던 실험을 시작하기도 전에 우리 조 실험대 위의 실험기구가 망가졌다는 조교의 말을 듣고는 절망한다. 빨리 끝날 줄 알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실험 늦을까봐 열심히 달렸는데! 하지만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 어떤 조든 하나라도 실험이 빨리 끝나 그 조의 실험기구를 빌려 실험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다행히도 빠르게 실험을 끝낸 조가 있어 그 실험대에서 실험을 수행하지만, 다섯 번씩 반복 실험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짓누르는지 여러 번 실수를 저지른다. 그래도 정신을 다시금 붙잡고 실험을 진행하다 보니 끝이 오긴 왔다.
실험이 끝나자마자 가방을 챙긴 뒤 시간을 확인한다. 벌써 일곱 시가 다 되어간다. 어제 우카이 상과 만날 약속을 잡았으니 뭔가를 사들고 가야하긴 하는데 하고 서둘러 마트를 향하던 때였다. 갑자기 전화가 울려 화면을 보자 [히나타]라는 이름이 보인다. 여보세요- 하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츠키시마!" 하는 들뜬 목소리가 들린다.
"츠키시마, 츠키시마!“
"...한 번만 말해도 다 알아듣거든...?“
계속되는 실험에 지쳐있던 탓인지 조금 삐딱하게 답이 나갔지만 그런 것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지 히나타가 기세 좋게 대화를 시작한다.
"카라스노 모임 이후 처음 연락하는 건데, 츠키시마 잘 지내?“
"뭐... 그럭저럭.“
"그 때 다이치 선배 차 타고 같이 올라갈 줄 알았는데- 먼저 출발했대서 아쉬웠어.“
그 말에 아키테루 형의 차를 타고 먼저 올라갔던 것이 생각나 나도 모르게 "...미안." 하고 답을 한다.
"아니, 미안하라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손사래를 치는 히나타의 모습이 눈 앞에 그려진다. 그 모습을 생각하며 버스에 올라탄다.
"츠키시마, 지금 어디 가는거야?“
"...응?“
"버스 타는 것 같길래.“
태그하는 소리를 들은 것일까, 사소한 소리 하나도 놓치지 않는 히나타의 감각에 경의를 표할 지경이었다.
"마트에 가려고. 그나저나 너 귀 참 밝다, 내가 버스 탔는지 어떻게 알았어?“
"카드 찍는 소리가 들리길래. 근데 마트는 왜 가는데?“
그 물음에 굳이 숨길 필요도 없고해서 "내일 카라스노로 내려가기로 했거든." 하고 대답한다. 왜 내려 가냐고 묻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래?" 하는 짤막한 반응을 보인 뒤 히나타는 그에 대한 물음을 하지 않았다. 대신 "다음엔 우리 학교 놀러 와 줘! 맛있는 거 많이 사줄게!" 라는 말을 한다.
"나도 만날 수 있고, 다이치 선배도 만날 수 있으니깐. 함께 놀자.“
"그래. 알았어. 이번 주는 바빠서 못 가지만 다음에 시간 나는 대로 놀러갈게.“
그 말에 앗싸! 하고 기쁨을 감추지 못 하는 히나타의 탄성이 들린다.
카라스노 모임 이후 여러 일들이 생겨 잊고 있었지만 끊임없이 내 옆에서 조잘대며 활기를 불어넣던 히나타의 모습이 떠올라 지쳐있던 심신이 풀리는 것만 같다.
마트에 도착해 우카이 상에게 줄 레몬 맛 사탕을 집어 든다. 혹시 또 무언가 사갈만한 것이 있을까 하고 선반들을 둘러보는데 딱히 살만한 것이 눈에 띄지 않아 계산대로 향한다. 레몬 사탕 하나만 살 거였으면 집 근처 편의점을 갈 걸 괜히 여기까지 왔나 싶다가도 지난 번 우카이 상에게 드렸던 레몬 사탕이 마트에서만 파는 것이었으니깐... 헛걸음은 아니었어, 하고 자기 합리화를 하며 집으로 돌아간다.
=
하나마키의 전공은 공과대학 기계과인데 일반 화학을 재수강 하느라 있었던 것. 츠키시마와는 다른 분반이지만 수업을 째고 나온 상황이다.
두 사람은 오이카와가 알려줘서 서로가 같은 학교인 것을 알고 있었다.
츠키시마에 대한 하나마키의 관심은 수치로 표현했을 때 4이다. (0이 최하, 9가 최대)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오이카와가 안경군 우리 학교 왔어! 하고 호들갑 떨 때 였다.
=
하나마키 호감도 +3 (대화)
하나마키 현재 호감도 = 7+3 = 10
히나타 호감도 +3 (통화)
히나타 현재 호감도 = 27+3 =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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