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도 울리지 않았는데 저절로 눈이 떠져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머리맡에 놔뒀던 핸드폰을 확인해보지만 여전히 야마구치의 답문은 오지 않았다.

서운한 감정이 들긴 했지만 이내 그 생각을 눌러버리고는 서둘러 씻고 나온다.

후타쿠치상과 만나기 전에 뭘 준비를 하면 좋을까, 하다가 밖으로 나선다.

3월 말인데도 아침이라 그런지 쌀쌀한 기운에 몸을 움츠리며 집 앞 편의점으로 달려간다.

몸을 녹이려 따뜻한 두유 하나와 함께 몇 가지 주전부리를 담아 계산을 한다.




따뜻한 두유를 마시며 편의점을 나선다.

아까보다는 밖이 춥게 느껴지지 않아 느긋하게 걸으며 후타쿠치상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오늘 만나기로 하곤 어디서 몇 시에 만날지 안 정한 것 같아서요. 어디서 볼까요?]

방문을 열고 들어갈 때 쯤 [난 언제가도 상관없는데, 넌 어때?] 하는 답이 온다.

몇 시에 어디서 보자! 라는 답이 올거라 생각한 것과는 달리 내게 의사를 묻는 후타쿠치상의 행동에 또 한 번 그의 배려심을 느낀다.

[아침 드셨어요?]

[아직. ?]

마시고 있는 두유병을 탁자에 내려놓고는 [잘 됐네요, 아침 같이 먹고 출발할까요?] 라 보낸다.

[그래, 어디서 볼까? 뭐 먹고 싶은거 있어?]

긍정의 답을 보자마자 저번에 쿠로오씨, 코즈메상과 함께 갔던 라멘집의 이름을 대고는 30분 후에 만나자는 약속까지 잡는다.

 



분명 약속을 잡자마자 나왔는데 30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이게 다 주전부리를 챙긴다고 숄더백을 꺼내려하는데 어디에 있는지 못 찾아 허둥댄 탓이다.

그래도 우리 집이 후타쿠치상 집보다는 가까우니깐... 하고 마음을 놓았는데, "늦어" 하는 소리에 정신이 퍼뜩 든다.

"벌써 도착하셨어요?"

"기다리게 하는건 체질에 안 맞아서. 뭐해, 들어가자."

가게 문을 열고 눈짓을 하는 후타쿠치상에게 고마워요- 라 말하며 가게 안으로 들어선다.

뭘 먹을까 하고 고민하다 평소 자주 먹던 소유톤코츠라멘을 시키려 하는데 후타쿠치상 역시 그 메뉴를 고른다.

"신기해요."

"뭐가?"

"입맛이 비슷한 것 같지 않아요? 주먹밥집에서 후타쿠치상이 골랐던 것도 제게 잘 맞는 메뉴였고, 지금 고른 라멘도 그렇고."

"그러네. 단 것을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 후타쿠치상 단 것 좋아해요?"

"구미젤리 좋아하거든. 껌이나 사탕도 늘 넣어갖고 다녀." 하면서 후타쿠치상이 주머니에서 사탕 몇 알을 꺼낸다.

"너도 단 것 좋아하잖아, 딸기 케이크."

후타쿠치상의 말에 "어떻게 아셨어요?" 하고 반문하자 "예전에 상점가 지나다가 케이크 먹는 모습 봤었거든." 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런 것까지 기억하는거에요? 섬세하시네요-"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거든."

뭐가 인상적이었냐 물으려 하는데 주문한 라멘 두 그릇이 나와 잠시 말을 멈춘다.

"조용하고 아무 것에 관심이 없어보이던 녀석이 행복한 표정으로 케이크를 먹는게 인상적이었어."

라멘을 반쯤 먹어가던 후타쿠치상이 지나가는 말처럼 내가 묻고 싶었던 것을 말한다.

"저런 표정도 지을 줄 아는구나, 하고 지나쳤었는데 그 모습이 뇌리에 박혀버린거야."

검지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톡톡 치면서 후타쿠치상이 날 바라본다.

"이후엔 세죠전에서의 네 활약을 보고 완전히 빠져버린거지만."

생각보다 오랫동안 내게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이 조금은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는데 "잠깐 화장실 좀" 하고 후타쿠치상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다행이다 싶어 고개를 들려고 하는데 핸드폰 화면이 점멸하는 것이 보여 고개를 다시 숙인다.

[미안, 츳키. 어제 일찍 골아떨어지는 바람에 이제야 문자 봤어]

[화난건 아니지...? 츳키, 정말 미안]

[츳키, 츳키, 이번 주말에 우리 만나기로 했던거 기억하지...? 그 때 내가 맛있는거 쏠게ㅜㅜ]

연속으로 세 통이나 메시지를 보낸 야마구치의 행동에 웃음이 나온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10시도 되기 전에 잠에 빠졌던 것일까.

잘 자고 일어나서 내 문자가 왔단 걸 알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답문을 보냈을 야마구치를 상상하자 내가 아는 야마구치 타다시가 맞단 생각이 든다.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고 예전만큼 얘기도 자주 하지 못 하지만 야마구치가 변한 것은 아니다.

그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지만 너무 놔주는 것도 아닌 것 같아 일부러 답을 보내지 않고 핸드폰 메시지 화면만 바라본다.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아?"

어느새 자리에 돌아온 후타쿠치상이 날 바라보다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린다.

"친구?"

", 야마구치요."

"정말 친한가보네"

"?"

"너 지금 표정이 어떤 줄 알아?"

"...어떤...데요..?"

"마치 케이크를 앞에 두고 싱글거리는 모습, 그 자체야."

그 말에 카메라를 켜 내 얼굴을 확인한다.

입꼬리가 올라간 얼굴을 보고 나서야 후타쿠치상의 말을 이해한다.

"그 정도로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깐 조금은 샘이 나네."

"문자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샘내고 후타쿠치상 속이 좁네요?"

"좋아하는 사람이 다른 남자랑 문자 주고 받는걸 보고 좋아하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냐?"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튀어나오는 후타쿠치상의 말에 비식 웃음이 흘러나온다.

국물 한 숟가락을 뜨려는데 "주문하신 구운 주먹밥입니다." 하며 주인 아저씨가 접시를 내민다.

영문을 몰라 주먹밥 접시만 바라보는데 "안 받고 뭐해?" 하고 후타쿠치상이 접시를 받아 탁자 위에 놓는다.

"라멘만 먹기엔 아쉬워서 더 시켰어. 어제도 주먹밥 먹었지만 괜찮지?"

"...언제 시키셨어요?"

"아까. 어서 먹어봐."

내 쪽으로 접시를 미는 후타쿠치상의 사소한 행동에 고마움이 느껴진다.

 



식사를 다 마치고는 내 몫의 돈을 내려 하는데 "계산 다 했으니깐 나와." 하고 후타쿠치상이 문을 열어준다.

무슨 말인가 싶어 주인 아저씨를 바라보자 "아까 저 쪽이 계산 했어요." 라 대답한다.

후타쿠치상을 따라 나가며 "언제 계산한거에요, 아니 제 것까지 계산한거에요?" 라 묻자 "그냥 사줘서 고맙다고 말하면 되지 뭐 그렇게 말이 많아?" 하며 후타쿠치상이 눈썹을 살짝 찌푸린다.

"... , 일단... 고마워요."

"일단이 뭐야, 일단이."

이마를 콕 찌른 후타쿠치상이 "대신 수족관에서 마실 것 사주기다?" 하고 웃는다.

버스 정류장 앞에 서자마자 시간을 딱 맞춰 버스가 도착한다.

"매번 기다려야 버스가 오더니 오늘은 왜 바로 들어오지?"

지갑을 잠바 안주머니에 넣으며 중얼거리는 후타쿠치상에게 "제가 있어서 그래요." 라 툭 던져놓고 뭔가 부끄러운 마음에 서둘러 자리에 앉는다.

"그래, 네 덕분이야."

뭐가 너 때문이냐고 놀리듯 말할거라 예상했지만 그와는 달리 부드럽게 말하며 내 옆자리에 앉는 후타쿠치상을 바라본다.

"?"

"...후타쿠치상 원래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럼 내가 맨날 말꼬투리만 잡고 늘어지는 줄 알았어?"

콧방귀를 뀌며 창밖을 바라보는 후타쿠치상의 시선을 따라 나 역시 창밖을 바라본다.

"매번 버스를 탈 때마다 혼자 바깥 풍경을 봤었어. 어지간하면 서서 가고, 정말 힘들 땐 맨 뒷좌석에 틀어박히듯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도 보고 도로를 달리는 차도 보고. 저 사람들은 이 시간에 어딜 가는 것일까, 저 사람들도 힘든 하루를 보내겠지? 모두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아야하는 걸까? 그런 질문을 계속 해댔었어. 하지만..."

밖을 바라보던 시선을 후타쿠치상으로 돌렸을 때 그가 빙긋 웃으며 꺼낸 말에 잠깐이지 두근거림을 느낀 것도 같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니깐 저렇게 살아가는 거다. 라고 결론을 내리니깐 마음이 편해졌어. 나한텐 그런 사람이 너고."


 


후타쿠치상의 말에 뭐라 말을 이어나가야 할지 몰라 손만 꼭 쥐고 있다가 가지고 온 주전부리가 생각나 가방을 연다.

"후타쿠치상도 단 것 좋아한다고 하셨죠? 마침 달콤한 주전부리들 사왔는데 좀 드실래요?" 하고 손에 잡히는 것을 꺼내든다.

"우와, 구미젤리?"

그러고보니 구미젤리 좋아한다고 그랬지, 하고 라멘집에서 나눴던 대화를 떠올린다.

"수족관 오가는 길에 입이 심심할까봐 이것저것 사봤는데- 우연히 후타쿠치상이 좋아하는거였네요."

"그러네. 신기하다. 내가 뜯어도 될까?"

후타쿠치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아이 같이 웃으며 후타쿠치상이 구미젤리의 포장 봉지를 쭉 뜯는다.

그러더니 빨간 젤리를 집어 내 입 앞에 갖다댄다.

당황스러운 그 행동에 "......뭐에요?" 라 말하자 "네가 사왔으니깐 네가 먼저 먹어봐야지. 이거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맛." 하고 후타쿠치상이 해맑게 웃는다.

"...잘 먹을게요."

내가 사와놓고나선 뭘 잘 먹을게요 인거야? 속으로 그런 말을 외치면서도 후타쿠치상이 내민 젤리를 입 안으로 넣는다.

"그럼 이제 나도 먹어볼까?"

장난스럽게 웃으며 입안에 젤리를 서너개 던져 넣는 후타쿠치상의 모습이 조금은 귀엽다.

분명 어제 영화를 볼 때 까지만 해도 조금은 어색했던 것 같은데 계속 부딪히며 색다른 모습들을 봐서 그런지 점점 편해진다.

"이런 것도 나쁘진 않네요."

"?"

"아녜요."

이렇게 하나씩 모르는 것을 알아가며 상대와의 추억을 채워나가는 것이 생각보다 즐겁단 것을 하루하루 알아가는 것 같다.

 



수족관에 도착하자마자 "어디부터 볼까요?" 하는 내 물음에 후타쿠치상이 "네가 가고 싶은 곳이면 어디든 괜찮아." 라 대답한다.

기왕 내게 선택권이 온 김에 지난 번 우카이상과 왔을 때 못 봤던 관 위주로 보는게 낫겠단 생각이 들어 발걸음을 옮긴다.

모든 관이 다 예쁘고 아름다웠지만 산호관이 정말 신기했다.

상아색으로 삐죽삐죽하게 나와있는게 끝이겠거니 하고 생각한 것과는 달리 다양한 색과 모양을 뽐내는 광경에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마음에 들어?"

"... 정말 환상적이에요이렇게나 다양한 산호가 있는지 몰랐는데... 모여있으니 너무 예뻐요."

"그치나도 이 앞을 지나갈 때 마다 예쁘단 생각하거든."

산호 수조를 바라보던 고개를 돌려 후타쿠치상을 바라본다.

후타쿠치상의 두 눈이 눈 앞의 광경을 가득 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부러워요."

"뭐가?"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을 늘 볼 수 있는 후타쿠치상이요물론 일하는게 힘들거란 것도 잘 알아요그치만 그냥... 이런 공간에 있을 수 있단 사실이 부러워요꿈만 같은 세상이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일할 때 좀 더 즐겁겠다남들이 못 누리는 동화속 세상에 내가 들어와있다고 생각하면."

현실도 모르고 그런 속 좋은 말한단 핀잔 대신 내 말을 기분 좋게 받아들이는 후타쿠치상의 말에 더 행복해진다.

조금씩 흔들리는 감정의 흐름에서 후타쿠치상의 옆얼굴선을 따라 시선을 움직인다.

날카로운것 같으면서도 동그란 눈살짝 다문 입술.

곧게 뻗은 목선을 따라 나보다 더 탄탄하게 잘 발달한 팔까지 훑지만 그 시선을 눈치채지 못 한 것인지 후타쿠치상은 여전히 산호수조를 바라보고 있다.

날 좋아한다면서 내 앞에서 다른 것을 황홀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싫다.

야마구치의 문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샘이 난다던 후타쿠치상의 말이 이해가 가자 거리낄 것이 없었다.

산호에 정신이 팔린 후타쿠치상의 팔을 붙잡고 내 쪽으로 후타쿠치상의 시선을 돌린다.

얼떨떨한 표정의 후타쿠치상에게 "이제 그만 나가요." 라 말하며 돌아선다.

"아직 안 본 관들도 있는데...?"

"괜찮아요꼭 오늘만 날인 것도 아니고."

"기념품점도 안 갔잖아."

후타쿠치상의 말에 걸음을 멈춘다.

"저번에도 그냥 나가느라 못 가지 않았어이왕 온 김에 기념품점도 구경해야지귀여운 것들도 많고 스티커사진도 찍을 수 있어애 같다고 넌 싫어할수도 있지만 난 너랑 같이 이것저것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묻어나는 목소리에 "그건 아니에요-" 하고 말을 막는다.

"싫지 않아요오히려 가고 싶어요그치만..."

그치만 후타쿠치상이 계속 산호에만 정신이 팔려있으니깐-! 이라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등이 따뜻해짐을 느낀다.

"그럼 그렇다고 말하지 그랬어난 그저 네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하고 싶어 더 주의깊게 본거였는데-"

엇비슷한 키라 그런지 후타쿠치상의 떨리는 숨소리마저 날 감싸안는 것처럼 느껴진다.

온 몸을 후타쿠치상에게 맡긴 채 "그래도 날 더 바라봐달라구요-" 하는 어리광을 부리며 내 허리를 감싼 그의 손등 위에 내 손을 포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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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타쿠치 호감도 : 츠키시마가 단 것을 좋아한다, 라는 사실을 알고 기억까지 하는 것 (+4), 내 쪽으로 접시를 밀어준 고마움 (+2), 버스 안에서의 대화 (+3), 네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하고 싶어서 그런거야, 라는 말에 감동 (+3)

후타쿠치 현재 호감도 = 12+4+2+3+3 = 24

 


야마구치 호감도 : 연속으로 세 통이나 메시지를 보내 옴 (+3)

야마구치 현재 호감도 = 18+3 =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