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 군, 나 이제 졸업해.

, 알아요.


너무나도 덤덤한 말투에 힘이 탁 풀린다.


나 도쿄로 가면 자주 못 볼 텐데 괜찮아?

“…”


예상은 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꽤 서글프다. 늘 자신이 먼저 약속을 잡고 사랑한다, 좋아한다는 표현을 해댄다.

 

 


*   *   *

 


같은 감정까진 바라지 않아, 사귈래? 라 지나가듯, 터져나갈 것 같은 심장을 겨우 다스리며 덤덤한 척 꺼냈던 말에 시뮬레이션 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그러던가요. 하고 바로 대답해줬을 때는 뛸 듯이 기뻤었다.


하지만 마치 연애를 남의 일인 것 마냥 이어가는 그의 태도에 조금씩 지쳐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내가 좋아서 시작한 연애라지만 이렇게 일방 통행으로 연애가 진행될 줄은 몰랐었기에 괜히 고백을 했나?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이렇게 답답한 하루 하루를 보내던 와중에 도쿄의 XX 대학에서 날 스카우트 하고 싶다는 연락이 들어왔다.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전액 장학생에 용돈까지 얹어준다니, 거부할 이유가 없잖아?

그렇지만 연인-이라 불러도 될 진 모르겠지만-의 얼굴이 아른거려 갑작스러워서 그런데 부모님과 상의한 후에 내일 대답 드려도 될까요? 라 묻자 자신들도 바로 답을 바란 것은 아니라며 부모님, 학교 고문 선생님과 함께 상의를 한 후 사흘 내로만 답을 달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꽤나 신사적인 대응에 더욱 믿음이 가 감사합니다, 꼭 좋은 대답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라는 끝 인사까지 덧붙였었다.


전화를 끊은 후 바로 츠키시마에게 연락을 해 지금 만날 수 있어? 라 물었다. 그러자 무슨 일이에요? 라는 물음이 돌아왔고 “…전화로 말하긴 어려워, 잠깐이면 되니깐. 하고 조르듯 말을 이어나가자 알겠어요. 사거리 쪽에서 만나요. 라 말한 뒤 내 대답도 듣지 않은 채 먼저 전화를 끊어버린다. 그의 이런 행동에 조금 상처 받는다. 아무리 내가 먼저 시작한 관계라 상대적으로 을인 입장이라 할지라도 이건 아니잖아, 하고 서운함이 밀려온다.


하지만 츠키시마를 기다리게 하면 더욱 안 좋은 결과가 벌어질 것을 알기에 코트를 걸친 뒤 사거리 쪽으로 뛰어 나간다. 코트 주머니에 양 손을 꽂아 넣고 헤드폰을 쓴 채 가로등 앞에서 빙빙 돌고 있는 츠키시마가 보여 더욱 빠르게 발을 움직인다. 그의 어깨에 손을 대자 헤드폰을 내리고는 그가 날 바라본다.


늦어서 미안.

아녜요. 오이카와 씨가 나오기 편한 위치로 잡을걸, 제가 잘못 생각했죠 뭐.


그런 뒤 대화가 끊긴다. 날 빤히 바라보는 츠키시마에게 어떤 식으로 말을 꺼내야 할까 고민을 하다 저기 말이야, 만약에 내가 졸업과 동시에 도쿄로 간다면 어떨 것 같아? 하고 직접적으로 물어본다.

그 물음에 츠키시마는 어떤 답도 시원스레 내놓지 않고 내 얼굴만 바라본다. 한참 침묵을 이어가더니 오이카와 씨의 미래를 생각해보세요. 라 말하고는 내 대답을 듣지 않은 채 가버렸었다.


그 말의 의미는 뭐였을까

 도쿄로 가세요. 였을까 아니면 저와 함께 있어주세요. 였을까

그러나 재차 물어볼 용기가 없었다.

 



*  *  *

 

 

결국 난 떠나기로 했다. 이렇게 좋은 조건을 놓칠 수 없었다

거기다 츠키시마가 자신을 적극적으로 붙잡아주지 않은 것에 대한 실망감 역시 내 마음을 흔들었다

그리고 몇 주의 시간이 흘러 지금 여기, 벚나무 아래서 우린 또 다시 서로를 향한 줄다리기를 이어가고 있다.


뭐라도 좋으니 말 좀 해보지 그래?


대답을 재촉하는 자신의 앞에서 츠키시마가 고개를 푹 숙이고 서있다. 이대로 끝내는 것이 맞는 걸까? 물리적인 거리마저 멀어지면 더 이상 이 관계를 이어나갈 수 없을 텐데, 괜찮을까? 하고 씁쓸하게 웃을 때였다.

히끅- 몸을 살짝 달싹이며 기묘한 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츠키시마를 바라본다. 그 떨림은 조금씩 거세지고 기묘한 소리 역시 귓가에 박힐 정도로 커진다.


“…츠키시마?

괜찮을 리가 없잖아요!


갑자기 화를 내며 츠키시마가 날 쏘아본다. 하지만 그 눈은 물기가 어려 약해진 눈빛을 보낼 뿐이었다.


오이카와 씨의 미래를 생각하면 내가 웃으면서 보내줘야 하는 것이 맞아, 좋은 조건으로 스카우트 하겠다고 먼저 손을 내민 대학에 가는 것이 오이카와 씨의 5, 10년 뒤 미래를 따져봤을 때 제일 맞는 결론이야. 내 욕심 때문에 당신의 미래를 망칠 수 없어. 그래, 머리로는 그걸 다 이해하는데 난 너무나도 이기적인 사람이라 당신이 없는 미래가 상상되지 않는단 말이에요 그런데, 꼭 그렇게 몇 번이고 물어봐야겠어요? 당신의 미래를 잘 생각해보라고 한 것이 답이었고, 그나마 내가 내 감정을 짓눌러서 당신을 보내주려 한 것인데 왜 그렇게 날 괴롭혀요?


서럽다는 듯이 말을 토해내는 츠키시마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고 난 할 말을 잃는다. 너무나도 듣고 싶었던 네 진심을 모든 것이 정해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도쿄로 가는 것을 무를 수도, 그렇다고 내게 진심을 내뱉은 널 놓을 수도 없는 나는 그저 네게 다가가 울먹이는 널 안아주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떨림이 겨우 멎어 들어가는 츠키시마에게 왜 이제야 말했어, 붙잡았다면 난 네 말을 들었을텐데. 라 말하자 그럴 순 없으니깐. 아까 말 했잖아요. 내 욕심보다 오이카와 씨의 미래가 더 중요해. 하고 단호하게 대답한다.


하여간 고집은.

그 고집 덕분에 오이카와 씨 미래가 보장된다면 난 더 고집 부릴 수 있어. 다만 부탁이 있다면.


무슨 부탁? 이라 물으려는 자신의 얼굴을 붙잡고 츠키시마가 입을 맞춘다. 단 한 번도 먼저 스킨십을 한 적 없던 츠키시마의 돌발 행동에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자 내 가슴팍을 밀며 그가 말한다.


2년 뒤 오이카와 씨 학교 쫓아갈 거니깐 한 눈 팔지 말고 기다려요. 방학 때 마다 미야기로 꼭 오고.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두, 세 번은 영상 통화해요.


생각지도 못 한 귀여운 부탁에 웃음이 터진다.


뭐에요! 왜 웃어요?

아니, 그 정도는, 나 해줄 수 있어. 매일 영상 통화 할 수 있고, 츠키시마가 나 보고 싶다고 빨리 미야기로 와달라 하면 친구 차 빌려서라도 미친 듯이 달려서 올 수도 있다고.

그건 안 돼, 위험하잖아요.

위험해도 괜찮아, 츠키시마가 원한다면 난 다 해 줄 수 있어.

“…거짓말.


거짓말 아니야. 그런 의미로. 하면서 벚나무를 살짝 흔든다. 떨어지는 벚꽃 잎 사이로 눈을 깜박이며 날 바라보는 널 붙잡아 다시 한 번 입을 맞춘다.


불안해 할 필요 없어, 네가 싫다 해도 내가 계속 널 붙잡을 테니깐.


말은 잘 해요, 하고 투덜거리는 츠키시마의 손을 붙잡으며 사랑해. 하고 속삭인다. 그 말에 고개를 휙 돌렸지만 귀가 벚꽃처럼 분홍 빛으로 물든 츠키시마의 모습이 귀여워 붙잡은 손을 더욱 세게 잡는다.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도 손을 놓지 않는 그가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


츠키시마와의 연애가 일방 통행이라 생각했던 것은 잘못된 것이었다. 그는 단지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것이었을 뿐, 항상 내가 제안한 것을 귀 기울여 듣고 좋다고 생각하면 따라왔던 것 뿐이었다. 오해했던 것이 미안해 도쿄로 떠나기 전 까지 츠키시마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줘야겠다 생각하며 맞잡은 손을 앞뒤로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