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Q!! 카게츠키] 말의 의미 上
* 츳키른 [달의 앞면]을 진행하던 곳에서 리퀘를 받아 쓰려 했던 조각글이었는데 일이 조금 커졌습니다.
설정은 "시미즈 유키"의 BL만화 "是~ZE~"에서 따왔습니다.
처음 리퀘 받으려 생각했을 때 부터 '언령사-카미사마'의 관계로 글을 쓰고 싶었던거라'ㅅ')>
혹시 내용을 모르시는 분들은 BL만화를 읽어주셔도 좋고... 변형을 시키긴 했지만 여기서 나와있는 설정만으로 이해해주셔도 상관이..없...지..않을까요....(흐릿
=
1
달의 기운을 받아 탄생했다는 츠키시마 가문의 첫째 아이들에게는 특수한 능력이 있었다.
그 능력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데 이른바 ‘언령’의 힘을 가진다는 것이었다.
간혹 그 힘이 첫째가 아닌 아이에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강한 언령을 가진 부모의 결합으로 인해 자손 모두가 언령을 가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치만 언령의 힘이 강한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츠키시마 아키테루와 츠키시마 케이 형제의 경우는 전자였다.
언령을 부릴 수 있는 힘이 장손인 아키테루가 아닌 케이에게 모두 쏠려버렸단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아키테루는 자신에게 언령의 힘이 없단 것에 잠시 놀라긴 했지만 이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갓 태어난 자신의 동생을 바라보았었다.
언령을 힘을 가진다는 것은 양날의 검과도 같다는 것을 어린 아키테루 역시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자유자재로 언령을 부린다는 것은 그만큼 능력이 있고 가문에서도 인정을 받을 수 있단 말임과 동시에 언령을 사용하면서 되돌아오는 재액을 받아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케이...”
아키테루는 입술을 오물거리기만 할 뿐 소리를 내지 않는 자신의 동생을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흰 뺨에 손을 갔다대었다.
그 따뜻함을 느낀 것인지 케이가 까르르 웃으면서 작은 손으로 아키테루의 손가락 하나를 더듬거렸다.
“...케이, 비록 내겐 언령의 힘이 없지만 약속은 할 수 있어. 꼭 널 지켜줄게.”
그 말을 알아 듣기나 한 듯 아직 채 고개를 가누지도 못 하는 아이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 같았다.
2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츠키시마 케이는 철이 들기 이전부터 알게 되었다.
‘한 마디 말을 해도 신중하게 단어를 골라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 ‘남한테 상처를 주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그 화를 입 밖으로 내뱉는 것은 하면 안 된다. 참지 못 하겠어 뭔가 한 마디 하려거든 세 번 더 생각해보고 말해라.’
이유도 모른 채 부모님은 물론이고 주변 친척 어른들에게 계속 들어왔던 말을 츠키시마 케이는 신념처럼 여기기까지 했었다.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들 또한 같은 말을 들으며 살았겠지? 라 생각했지만 세상은 조금 달랐다.
아무렇지 않게 상대방에게 욕을 하거나 화를 참지 못 하는 주변 친구들을 보며 츠키시마 케이는 자신이 정립한 대화의 정도(正道)와 실제 대화의 차이가 있단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내뱉을 수는 없었다.
하면 안 되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 있어 입술을 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외에는 딱히 다른 것을 느끼지 못 했었다.
그 날, 그 얘기를 듣기 전 까지는.
그 날은 조금 무더웠다.
동네 아이들과 함께 산자락을 뛰어 다니느라 온 몸이 흠뻑 젖어 집에 얘기해 놓은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돌아오게 되었다.
“다녀왔습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인사를 하며 문을 들어서는데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다.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하며 다시 한 번 “다녀왔습니다.”라 인사를 했지만 여전히 조용하다.
하지만 자신이 신을 벗어놓은 옆에 형과 아버지의 신발이 놓여있는 것을 보아 두 사람이 집 안에 있는 것은 확실했다.
‘형은 아직 학교에 있을 시간일텐데 왜 벌써 돌아왔지?’ 라는 의문도 들었지만 그보다는 형과 놀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져 가벼운 발걸음으로 복도를 걸을 때였다.
늘 온화한 미소를 띠며 “케이, 학교 다녀왔니?”, “케이, 형이랑 같이 공룡 인형 가지고 놀까?” 하고 말하는 형의 다정다감한 목소리가 익숙한 자신에게 전혀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의 형의 목소리와는 달리 감정적인 형태로 탈바꿈한 목소리가 응접실에서 들려왔다.
들어선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와 동시에 무엇이 형을 저렇게 화나게 만든 것 일까하는 궁금증이 더 커져, 발소리를 죽이며 조심스레 응접실 문으로 다가가 귀를 갖다 대었다.
“아버지, 그래선 안 돼요.”
형이 대화를 하는 상대는 놀랍게도 아버지였다.
자신의 기억으로는 단 한 번도 형은 아버지에게 대들지 않고 뭐든지 받아들이는 아들이었는데 왜 저렇게 화를 내는 것일까?
귀를 더 쫑긋거리며 방문 너머의 말소리에 집중을 해본다.
“내년이면 케이가 학교에 들어가야 할 나이에요.”
“케이는 차기 당주가 되어야 할 몸이야.”
“물론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것이 무슨 말인지 알아요. 츠키시마 가문에서 태어나 강한 언령의 힘을 가진 자손이 대를 이어 나간다. 그리고 그 존재는 매우 중요하고 경애 받아 마땅한 이라는 것도요. 하지만 아직 어린 아이에요. 평범한 집안의 아이들처럼 교육을 받고 뛰어 놀기도 해야 할 나이라구요.”
“교육이라면 가정교사를 두고 할 수도 있는 것이고 친구가 필요하다면 만들어 줄 수 있어.”
“아버지.”
“네가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안다. 네 동생이 받을 고통과 외로움 때문에 그런 것이겠지. 만약 네게도 케이만큼의 언령의 힘이 있다면 고통과 외로움을 반으로 나눌 수 있을텐데.”
“...언제부터 언령을 쓰게 하실 건데요.”
“아마 곧이 아닐까 싶구나.”
그 말에 순간 귓가가 멍해지고 가슴 위에 납을 얹어놓은 것 마냥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확실한 것은 알지 못 한다. 하지만 자신의 가문이 언령을 쓰는 집안이라는 사실과 언령을 썼을 때 언령사에게 재액이 미친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일로 직접 닥칠 거란 사실은 전혀 생각지도 못 했었다. 그저 나와 상관없는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겠지, 언령을 쓰게 되더라도 어느 정도 나이가 되어야 쓰는 것 일테니 먼 미래일거야 하고 막연히 생각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실제 자신의 아버지와 형이 심각한 목소리로 자신의 얘기를 하는 것을 듣는 순간 모든 것이 현실로 다가왔다. 그 날카로움에 온 몸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만 같았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미친 듯이 절규하고 난 하고 싶지 않다고 울부짖고 싶었다. 그러나 이어진 형의 말에 무너져 내리듯 주저앉고 터져 나오려는 감정을 막고 소리를 죽일 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간신히 정신을 잡고 방으로 돌아왔을 때 형의 목소리가 귓가를 여전히 울렸다.
‘케이가 처음으로 언령을 쓸 때, 케이가 받아야 할 재액이 제게 돌아오게 해주세요.’
잔인하다, 그런 말을 하다니 형은 너무나도 잔인해. 내가 언령을 써야 한다는 현실이 다가오고 있단 것도, 언령을 써 재액을 받아야 한다는 것도 무섭다 생각하지만 그 두려움보다도 더 끔찍한 것은 자신의 언령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다칠 수도 있단 것이었다. 근데 그런 말을 형이 직접 나서서 해버렸다. 자신이 너무나도 두려워하고 있는 말을.
“그것만은 안 돼.”
나보다 여섯 살이 많은 형, 말이 많지 않은 자신의 옆에서 늘 대화를 시작하고 다정하게 손을 잡아주는 형, 불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곳을 무서워하는 자신을 제일 먼저 눈치 채고 침대 옆에 작은 스탠드를 놔주고, 혹시라도 천둥이 치는 밤이면 방 안으로 들어와 내 손을 감싸 쥐고는 함께 잠을 청하는 배려심을 가진 형.
그런 형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
“...지킬거야.”
그래, 다른 누구는 몰라도 형만은 지켜야 해. 그러기 위해서 나는 형의 저 부탁을 취소시킬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형을 설득시키려 해봤자 늘 보이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그게 무슨 말이니, 케이?” 하고 장난처럼 넘어갈 것이 뻔하고, 아버지에게 말을 해봤자 아버지와 형의 대화를 엿들었다는 사실을 직접 고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결국 답은 하나다.
“할 수 있을까...?”
걱정 섞인 목소리를 내자마자 “아냐, 할 수 있어.” 하고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를 내며 불안감을 지워보려 애를 쓴다.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감정을 조금씩 진정시켜 본다. 최대한 즐거운 생각을 하며 머리를 비워야지, 그래, 이따 형의 손을 잡고 함께 공놀이를 하자 말해볼까? 그래 저번에 공놀이하러 나갔다 들렸던 가게의 딸기 케이크가 맛있었지? 케이크도 먹자고 졸라보자. 분명 ‘케이크 먹으면 가족들과 밥 먹기 힘들잖아.’ 라 말하면서도 내가 그래도.. 하며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면 한숨을 잠깐 쉬고는 ‘어쩔 수 없지.’ 하고 작은 케이크 하나를 안겨줄 것이 뻔하다. 내게 츠키시마 아키테루라는 형은 늘 그런 사람이니깐. 자신보다도 나를 아끼는.
3
언젠가 오겠거니 했던, 그러나 오지 않기를 바랐던 날이 오고야 말았다.
어렵게 입술을 떼며 “케이, 너한테는 정말 미안하지만...네가 할 수밖에 없는 일이 있단다.” 라는 말과 함께 날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빛을 보며 “언령, 인가요?” 라고 먼저 치고 들어갔다. 그 말에 아버지는 물론이고 형도 잠깐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알고 있다니 그럼 얘기가 편하겠구나.” 라는 말이 이어졌다.
“언령을 사용한다는 것은 그만큼 네가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큰 책임이 따른다는 의미다. 또한 재액을 받아야 한다는 문제도 있는데.”
그 말에 침을 꿀꺽 삼킨다. 분명 예상했던 일이지만 재액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걱정이 앞서기 시작한다. 재액이라는 말만 들었지 실제로는 어떤 일이 펼쳐지는지를 알지 못 했다. 사용한 언령과 같은 정도의 결과를 내가 받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언령을 사용한 횟수만큼 수명이 줄어드는 것인지, 혹은 어딘가 다치는 것인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는 자신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아버지가 자상한 표정을 한 채 다시금 입을 연다.
“그렇게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단다, 케이. 그저 네가 사용한 언령에 의해 조금 아플 뿐이야. 네가 내린 말의 무게만큼 너 역시 그 말에 대한 책임을 받을 뿐이지. 그치만 꼭 네가 그 재액을 받을 필요는 없단다. 아직 어린 네가 재액을 받기엔 무리라는 것을 알고 있단다. 아키테루가 널 대신해 재액을 받겠다고도 말을 했지만...”
그 말에 아키테루 형의 어깨가 움찔하며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마치 ‘그 말은 왜 하시는거에요?’ 라 묻듯이. 그러나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버지가 말을 이어간다.
“재액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긴 하단다. 네가 언령을 쓸 나이가 되면 주려 준비를 했던 것이야.” 라 말하며 아버지가 “토비오, 들어오렴.” 하고 굵직한 목소리를 뽑아낸다.
아버지의 부름이 나오자마자 방문이 열리며 검은 머리의 소년이 들어온다. 아키테루 형 나이 또래로 보이는 그가 자신의 옆에 선다. 무슨 일인지 도대체 영문을 알 수가 없어 아키테루 형을 바라보지만 형 역시 그 소년을 모르는 눈치였다.
“언령사의 재액을 다시 받을 수 있는 카미사마라는 존재가 있단다. 네 옆에 있는 토비오는 널 대신해 재액을 받을 수 있어.”
재액을 대신 받을 수 있는 카미라는 존재, 처음으로 듣는 말이었다.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도 몰랐지만 남에게 자신의 재액을 떠맡긴다는 사실이 껄끄러워 “아버지...” 하고 말을 걸려 할 때였다.
“네가 내 언령사?”
맘에 들지 않는다는 듯 날카로운 눈매로 날 훑어 내려 보던 그가 “정말 이런 애가 내 언령사라는 거야, 츠키시마?” 하고 묻는다. 대화의 진행상황을 보아하니 그가 말하는 츠키시마는 분명 자신의 아버지가 틀림없었다. 기껏해야 형 나이 밖에 안 되어 보이는데 아버지한테 반말을 하다니, 맘에 안 들어... 하고 그를 노려보는데 “그래, 맞아. 내 둘째 아들 츠키시마 케이, 내 다음으로 츠키시마가의 훌륭한 언령사가 될 아이지. 다른 누구보다 널 믿기에 맡기는 거야.” 라 웃으면서 아버지가 다가오는 것이었다.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케이라고 했던가? 잘 부탁해.”
여전히 고자세에 반말로 날 대하긴 하지만 날 바라보는 아버지 앞에서 내밀어진 손을 밀쳐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잘 부탁해요.”
“그나저나 카미사마 사용법에 대해선 알고 있는 거야? 재액을 옮기는 방법도 알고 있어?”
몰아치는 질문에 잠깐 입을 다물고 있다가 “아뇨, 카미사마라는 존재 자체를 지금 처음 알았어요.” 라 대답하자, “하아, 츠키시마. 도대체 아들한테 뭘 가르친 거야.” 하고 한숨 소리가 이어진다.
“한 번만 얘기할거니깐 잘 들어. 일단 재액을 옮길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어. 하나는 네가 언령을 사용하기 전에 먼저 ‘이 언령을 사용해 받아야 할 재액은 모두 카미사마인 카게야마에게로 돌아간다.’ 라 말하는 방법, 그리고 또 하나는...” 하며 말을 하던 그가 싱긋 웃더니 내게 조금만 더 다가오라는 손짓을 한다.
뭐지? 라 생각하며 다가간 순간 내 턱을 잡아당기더니 그가 입을 맞추기 시작한다.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가슴을 밀어보지만 아직 어린 자신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것인지 “뭐 하는 거 에요?” 하고 달려들어 자신과 그를 떼어놓은 아키테루 형이 아니었으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갔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게 무서운 표정 짓지 마. 재액을 받아내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었잖아. 그냥 간단한 거야. 이렇게 입을 맞춘다거나 상처가 깊으면 좀 더 깊숙이 오랫동안 점막을 접촉하면 된다는 것을 보여준 거라고. 아직 어린 애라 점막 접촉을 모를 것 같아 견본을 보여준 것일 뿐인데 무슨 문제라도?”
“토비오, 애들 놀리지 말고.”
그제야 아버지가 나서 중재를 해준다.
“앞으로 언령을 써야 할 때는 토비오에게 재액을 주면 된단다, 케이.”
카미사마가 무엇인지 왜 재액을 넘겨줘도 되는지 이야기가 이어졌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맞닿았던 입술이 기분 나빴다는 것 이외엔 남는 감상조차 없었다. 저런 사람에게 재액을 넘기느니 차라리 내가 받는 것이 훨씬 낫겠어, 내가 쓰나봐라! 하는 고집만이 스멀스멀 기어오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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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잠깐 했던 배구부의 영향으로 키타이치 제1중에 입학하자마자 당연하다는 듯이 배구부에 입부를 하게 되었다. 그 때 처음 만나게 된 그는 너무나도 반짝이는 사람이었다. 늘 살랑살랑 웃고 있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매력 역시 가진 이였다. 연습을 할 때 그의 손에서 띄워지는 공은 안정적으로 내 손에 감겼고, 그의 센스는 뛰어났다. 점프 서브를 하면서 뛰어오르는 그의 모습 역시 아름다웠다.
남자를 보고 아름답다 생각하다니-
“내가 미쳤나.”
자조적인 소리를 내면서도 그의 모습만 눈에 들어와 귀찮은 것은 딱 질색인 자신의 성격도 밀어둔 채 그를 따라 끝없이 연습을 했다. 조금이라도 더 그의 공을 받고 조금이라도 더 그의 따뜻한 눈빛을 받고 싶어서. 그런 작은 욕심이 날 움직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의 반짝이는 미소가 이어지지 않는 시기가 다가와버렸다. 그건 나와 함께 입부한 카게야마 때문이었다. 그 때 난 처음으로 내가 그와 같은 세터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를 하면서도 화가 났었다. 내가 진정으로 아름답다 생각하고 존경하는 사람이 저렇게 힘들어하는데 난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이, 자신의 노력을 뛰어넘는 재능으로 빛나고 있는 후배에게 질투하면서도 그만큼 되고 싶어 슬퍼하고 좌절하는 그의 옆에서 달래줄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힘겨웠다. 그의 옆에서 항상 붙어 있을 수 있는 이와이즈미 선배가 부러웠다. 그에게 “배구는 여섯 명이 강한 쪽이 강한거라구!” 라 말하며 화를 낼 수 있는 것 역시 부러웠다. 그 말을 내가 직접 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그러나 난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했다. 많은 1학년생 가운데 난 조용히 연습을 하는, 다소 특징이 없어 보이는 후배 1이었을 뿐이니깐. 그의 기억에 남을 리가 없다. 결국 난 중학교를 졸업하고 배구부를 떠나는 그에게 따로 인사도 하지 못 한 채 그에 대한 감정을 마음 속 깊이 묻어버릴 뿐이었다. 그리고 그를 저 기억 멀리로 떠나보냈다.
그가 떠난 뒤 2년 간, 그에게서 미소를 앗아갔던 동료와 함께 배구를 하게 되었다.
카게야마의 능력은 정말 빛이 나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뜨겁고 강렬한 그 빛은 태양과도 같아 다가갈 수가 없었다. 다가갔다간 내 자신마저 녹아 없어질 것 같은 그 날카로움과 자기 중심적인 태도에 점차 질려만 갔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특별한 감정을 품게 된 ‘그’에 대한 마음 때문에 카게야마에 대한 거부감이 들면서 시작되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카게야마의 고압적인 태도에 나 이외의 동료들 역시 지쳐만 갔다. 우린 더 이상 카게야마가 연결해 준 공을 받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와는 별개로 점차 배구에 대한 마음마저 식어만 갔다. 원체 무기력한 자신이 무언가에 열정적으로 빠져든다는 것이 어불성설이긴 했다. 하지만 분명 처음 이 학교에 입학했을 땐 뭔가 가슴이 뛰었는데, 시키지 않아도 나머지 연습까지 했었는데, 하며 기억을 더듬다가 다시 한 번 ‘그’를 떠올리게 되었다.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언제나 반짝였던 ‘그’. 따뜻하고 다정했던 미소. 그것이 나만이 아닌 모든 이에게 지어주는 미소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미소를 떠올리자마자 가슴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를 따라가고 싶다, 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버렸다.
그렇게 나는 아오바죠사이 고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어라, 쿠니미쨩, 우리 학교에 진학한 거야?”
당연히 날 기억하지 못 할 거라 생각했다. 카게야마처럼 그의 자리를 위협할만한 재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눠본 적도 없었는데 교문 앞에서 마주친 그는 날 기억했다.
“오랜만이야, 반가워. 쿠니미쨩이 우리 학교로 와줘서 고마워.”
처음 봤을 때와 다름없는 환한 미소를 보자마자 가슴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사그라지다시피 했던 배구에 대한 열정마저 샘솟는 것만 같았다.
“배구부에 들어올거지?”
당연하다는 듯이 묻는 그의 말에 제멋대로 입술이 움직이며 “그럼요.” 하고 답을 한다.
“앞으로 잘 부탁해.”
악수를 청하는 그의 길고 하얀 손가락을 멍하니 바라보다 “뭐해, 악수하자니깐?” 하고 웃는 그의 미소를 따라 손을 맞잡자마자 ‘아, 내가 이 사람을 향해 품었던 감정이 단순한 동경이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깨달은 사실에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입술을 뗀다.
“오이카와 선배.”
“으응~?”
“저도 잘 부탁드려요.”
“응, 그래, 기대하고 있을게.”
오른손을 살랑살랑 흔들며 뒤돌아서는 그의 모습을 두 눈에 가득 담으며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을 속으로 집어삼킨다.
‘당신의 바람대로 꼭 우승을 할 수 있게 열심히 노력할게요. 그러니깐 날 봐줘요, 조금이라도 더 많이.’
=
* 오이카와에 대한 자신의 감정에 붙을 이름을 처음으로 깨닫게 된 쿠니미, 라는 내용으로 진행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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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사람의 마음을 비추는 창이라 했던가?
그 말은 내게 딱 맞는 말이었다.
날 대하는 상대방의 말이 호의적이고 달콤하다 할지라도 그의 눈동자를 바라봤을 때 마다 난 늘 실망감을 느끼곤 했다.
‘또다. 말과 마음이 달라. 이 사람, 의도를 했건 의도를 하지 않았건 거짓말을 하고 있어.’
그 생각에 난 그 누구의 눈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당연히 누구에게도 마음을 허락하지 못 했다.
그런 사람이 있을 리 없겠지만 날 향한 말과 날 바라보는 눈빛이 일치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운명의 상대라 생각해야지, 라는 헛된 다짐을 했지만 당연히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 했었다.
씁쓸한 마음을 안고 이십여 년을 살아 온 내게 마음을 허락하게 한 남자가 생겨버렸다.
=
그를 만난 것은 보름달이 검푸른 하늘을 밝게 비추던 겨울밤이었다.
다음 날까지 제출해야 할 과제들을 하느라 평소보다 늦은 하교를 하고 있었다.
며칠 째 과제와 씨름하느라 피로가 쌓였던 탓일까, 눈앞이 캄캄해지며 몸이 휘청거렸다.
‘아, 이러다 땅과 부딪히고 말겠어- 아프겠지? 집에 소독약이 있던가?’ 라는 생각을 하며 차라리 긴장을 풀고 쓰러져버리자, 라 다짐을 했을 때였다.
“어이쿠.”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날 일으켜 세워준다.
“괜찮아요?”
친절함이 잔뜩 묻어나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잠깐 취해 있다가 “아- 잡아주셔서 고마워요.” 하고 감사 인사를 건넨다.
“고마우면 나중에 밥이나 사줘요.” 하고 씨익 웃는 남자의 서글서글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아, 네.” 하고 긍정의 표시를 한다.
“하하하- 한 번 해 본 말인데 진짜 사주게요? 됐어요, 됐어.”
손사래를 치는 남자의 모습에 조금 오기가 생겨 “아뇨, 사 줄 거에요. 당신도 이 학교 학생인가요?” 라고 묻자 “네, 맞아요. 혹시 그 쪽도?” 라 붙임성 있게 다가온다.
고개를 끄덕이자 “아, 그렇구나. 반가워요. 나 여기 공과대학 기계과 3학년 쿠로오 테츠로라고 해요.” 하면서 손을 내민다.
그 손을 멀뚱히 바라만 보자 “에이, 좀 반가워해주면 안 돼요?” 하며 내 손을 억지로 끌어당겨 악수를 하며 “그 쪽은 이름이 뭐에요?” 하고 묻는다.
생각지도 못 한 그의 행동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 하고 나도 모르게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맑다.’ 라는 생각이 들어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그와 동시에 그 눈동자에 빠져버릴 것만 같아 시선을 낮춰 그의 입술만 바라보았다.
하지만 머릿속은 온통 방금 전 봤던 그의 맑은 눈만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맑은 눈으로 날 바라봤던 사람이 있었나? 라는 생각과 함께 “심리학과 1학년 츠키시마 케이....” 하고 중얼거렸다.
분명 작게 말 했는데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1학년이면 말 놔도 되겠네. 츠키시마 케이라고 했지? 아직 1학년인데 이 시간까지 남아있던 것을 보면... 과제라도 한 건가? 배고플텐데 뭐라도 사줄게.” 하며 또 다시 내 손을 잡아 끈다.
지금까지 내게 이런 식으로 다가왔던 사람이 없었기도 했거니와 너무나도 빠르게 내 일상을 파고 드려는 그의 친밀감이 조금은 부담스러워 “괘...괜찮아요...” 하고 거절을 해보지만 “이것도 인연인데 커피라도 한 잔.” 하며 굳이 날 데리고 근처 커피 전문점으로 들어간다.
더 이상 거절을 하는 것도 모양이 이상할 것 같아 결국 그가 가리킨 테이블로 다가가 푹신해 보이는 소파에 몸을 누이듯이 앉는다.
그러다 날 데리고 들어온 그를 향해 눈을 돌린다.
많이 들어와 본 곳인지 메뉴판도 보지 않고 어려운 커피 이름을 술술 읊고는 “케이크, 괜찮아?” 하고 내 쪽을 돌아보고 묻는다.
온화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강함이 느껴지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케이크까지 주문을 마친 그가 음료와 케이크 두 조각이 놓인 트레이를 들고 내게 다가온다.
“뭘 좋아할지 몰라서 딸기 케이크랑 치즈 케이크로 주문해 봤는데 괜찮아? 생각해보니 커피를 마실 건지 차를 마실 건지도 안 물어봐서... 커피랑 차 하나씩 시켜봤어. 어느 쪽이 더 좋아?”
다정하게 물어오는 그의 입술만 바라보다 차와 딸기 케이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차랑 딸기 케이크가 좋다, 이거지?” 하며 내가 집은 음료와 케이크 접시를 내 쪽에 더 가까이 놔준다.
“츠키시마, 라고 했지? 이름은 케이라고 했고. 케이라면 어떤 한자를 쓰는 거야?”
“반딧불 형(蛍) 자요.”
“헤에, 예쁜 이름이네.”
“...남자한테 예쁜 이름 가졌다는 말, 실례에요.”
“부모님께서 널 소중히 여겨서 지어주신 이름을 가지고 그렇게 말하는 거 아냐.”
방금 전까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던 남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강하고 단호한 말투에 나도 모르게 움찔한다.
“나쁘다곤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사람들이 제 이름을 봤을 때 잘못 부른다거나, 놀리는 때가 있으니깐...”
“화내는 것도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떨면서 말 해. 내가 무서워?”
다시금 부드러워진 그의 목소리에 고개를 살짝 저으며 “아뇨.” 하고 답한다.
잠시 대화를 멈추고 음료와 케이크를 먹기 시작한다.
달콤하고 산뜻한 베리 향이 후각세포를 희롱한다.
내가 딸기를 비롯한 베리들을 좋아한단 사실도 몰랐을 텐데 어쩜 이렇게 잘 골라왔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찻잔에 입술을 갖다 댈 때였다.
“그런데 츠키시마. 내가 잘못 느낀 것 일수도 있지만, 왜 나랑 얘기할 때 내 눈을 바라보지 않아?” 라는 말이 귓가를 파고든다.
그 물음에 나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키며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고민을 하게 된다.
“왜 내 눈을 보지 않고 말 해? 난 츠키시마의 눈을 보면서 말하고 싶은데.”
지금까지 내게 이런 질문을 한 사람은 많았지만 내 눈을 보고 말하고 싶으니깐, 이라는 말을 덧붙인 사람은 이 사람이 처음이었다.
두근거리면서도 한 편으로는 두렵다.
혹시라도 내가 그의 눈을 바라봤을 때, 또 다시 실망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가슴을 콱 막히게 만든다.
하지만 보고 싶다.
어떤 표정으로, 어떤 눈으로 날 바라보며 저렇게 달콤한 말을 하는 것일까.
“츠키시마. 내 눈을 봐 줘.”
그런 내 마음을 눈치라도 챈 것인지 그가 더욱 더 달콤한 목소리로 날 부르며 손을 잡는다.
처음 만난 사이면서, 같은 남자인데, 왜 이렇게 내게 파고 들어오는 것일까.
그런데 왜 난 그런 그에게 조금씩 떨려오는 것일까.
걱정을 한웅큼 끌어안은 채 찻잔만 바라보던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본다.
처음엔 턱 선을 따라 눈을 굴리다가 시선을 조금 올려 얄쌍한 그의 입술을 바라본다.
“츠키시마.”
날 재촉하듯 다시 한 번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에 에라, 모르겠다- 하고 시선을 확 올려 눈이 마주친 순간 심장이 터져나갈 것만 같았다.
정말로 두 눈에 나로 가득 차있는 그 아름다운 눈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 라는 탄성을 내질러 버렸다.
무슨 연유로 내가 그런 말을 했는지 감을 잡지 못 한 그가 “어?” 하고 놀라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향해 상체를 숙인다.
“당신처럼 맑은 눈으로 날 바라봐 준 사람은 처음이에요. 제게 왜 자신의 눈을 보지 않고 말하냐며 화를 내거나 불쾌해 했던 사람은 많았지만 제 눈을 보고 말하고 싶다며 절 설득시킨 사람 역시 처음이라구요.”
흥분감이 터져 나와 있는 그대로의 말들을 뱉어내자 “뭐야, 그런 거야?” 하며 그가 웃는다.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렇다고 죽어도 여한이 없다느니 그런 말은 하지 마. 나 놀랐잖아.” 라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다정하다.
이런 사람이 계속 옆에 있어준다면 난 행복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쿠로오씨만 괜찮다면, 우리 앞으로 자주 만나지 않을래요?” 하고 물어본다.
쉴 새 없이 내게 말을 시키고 내 말에 즉각 대답을 하던 그가 갑자기 입을 다물어 버린다.
혹시 내가 너무 나갔던 것일까? 부담을 준 것일까? 라는 걱정에 “싫으면 거절하셔도 돼요.” 라는 말을 바로 덧붙인다.
“아니, 그건 아냐. 하지만...”
말끝을 흐리는 쿠로오씨의 눈과 입술을 번갈아 바라본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다.
싫은 것은 아니지만 뭐가 문제인 것일까, 초조한 마음에 남아있던 차를 단숨에 들이킨다.
열기가 남아있던 탓에 혀가 덴 것도 같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무슨 답이 나올 것이며, 그 답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남자의 복잡한 심리 상태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 것인지 그게 더 중요하니깐.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서야 “저기, 솔직히 말해도 될까?” 라는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끄덕이자 “좋아. 자주 만나고 싶어. 아니, 오히려 매일 같이 만나고 싶을 정도야.” 라는 예상치 못 했던 답이 흘러나온다.
내가 잘못 들은 것인가 싶어 그의 눈을 바라본다.
여전히 맑은 눈 그대로이다.
거짓말이 아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난 기쁨의 환호성을 지를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오히려 네가 더 싫어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싶은데, 사실 네가 건물에서 나올 때부터 쭉 지켜봤었어. 이런 말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첫 눈에 네게 반해버렸어.” 라는 말에 다시 한 번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한다.
“같은 남자인데 왜 이렇게 마음이 가는 것일까, 시험에 찌들어 내가 미쳤나 라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는데 네가 쓰러질 뻔 한 순간 나도 모르게 몸이 먼저 반응을 했어. 붙잡아야 한다, 라고. 평소에도 운동 신경이 좋단 말은 많이 들었지만 이렇게 날쌔게 달려가 잡을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멋쩍어하며 웃는 그의 얼굴이 내 눈에 한 가득 들어온다.
그 말을 하며 날 바라보는 눈은 더욱 맑고 선명하다.
이건 진심이다.
거짓의 기역자도 보이지 않아.
나도 모르게 그의 옆 자리로 다가가 앉은 뒤 그를 먼저 끌어 안아버렸다.
“쿠로오씨. 당신만 괜찮다면 나 당신과 평생 있고 싶어요. 당신처럼 내게 따뜻하고 진실 된 눈빛을 주며 말한 사람은 처음이야. 거기다 나, 당신을 보면서 떨렸단 말이에요.”
그러니깐- 그러니깐- 하고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날 바라보며 쿠로오씨가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 하고 입술을 살짝 맞부딪힌다.
“지금처럼 따뜻한 눈빛으로 늘 바라봐 줄 테니깐 사귈까?”
만난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은 상대에게 사귀자느니 평생을 함께 하자느니 말하는 것이 우습게 보일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서로가 서로를 원하고 함께 하고 싶다 말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좋아요.” 라는 대답과 동시에 다시 한 번 그와 입술을 마주쳤다.
=
그렇게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와 연인이 된 지 오늘로 딱 5년이 되는 날이다.
“케이- 무슨 생각해?”
달콤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며 볼에 입맞춤을 하는 그에게 “테츠로와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올라서.” 라 대답을 한다.
여전히 그는 날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고 사랑한다는 말을 해 준다.
나 역시 그런 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며 품에 안긴다.
이렇게 행복한 일상이 또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내년에도 함께 해요.” 라는 말과 함께 그의 목을 끌어안고 달콤한 입맞춤을 이어나간다.
=
잡담입니다아아
15년의 마지막 전력을 대지각!!! 해버렸습니다8ㅅ8)... 지각 안 하겠다고 다짐했는데 죄송해요8ㅅ8)...!
행복한 두 사람을 그려보고 싶어 글을 써봤는데 행복하게 보이시나요?
부디 행복하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ㅣ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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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 엔니로] 엔노시타 생일 기념
[Side. 후타쿠치]
으, 추워-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날이 포근했는데 날씨가 미쳤나, 왜 이리 줏대 없어? 라 투덜거리며 가방을 뒤적인다.
방한 용품을 착용하기엔 아직 날이 따뜻하긴 하지만 혹시 모르니깐, 하고 아침에 쑤셔 넣었던 얇은 목도리를 꺼내 대충 둘러멘 뒤 교문을 나선다.
돌담길을 따라 십여분 정도 걸었을 때, 낯익은 얼굴을 발견한다.
별다른 특징이 없는 얼굴에 조금은 의욕 없어 보이는 눈매.
꽤나 모범생처럼 보이는 외양에서는 상상도 못 했던 행동을 하는 것이 눈에 들어와 나도 모르게 “...담배?” 하고 내뱉는다.
그 말을 들은 것일까, 상대방이 날 바라보더니 고개를 까닥인다.
내가 누군지 알아본 것일까?
“후타쿠치 켄지 맞지?”
차분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는 그의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어있는 담배에 눈이 먼저 간다.
“이거 때문에 그래?”
의외로 모범생이네- 하며 담배 개피를 길바닥에 던져 불을 끄는 그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담배는 왜 핀 거야?” 라는 물음을 던진다.
“추우니깐. 이거 피면 따뜻해.”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그의 말에 흐응, 그래-? 하고 지나쳐가려던 때였다. 갑작스레 잡힌 손목에 놀라 그를 바라보자 “나 추워. 책임져.” 라는 말을 잘도 한다.
“뭔 소리야?”
“너 때문에 담배 껐잖아. 불 붙이자마자 꺼버렸다고, 아까워 죽겠어. 그러니깐 담배 한 개피 만큼의 따뜻함을 주지 않겠어?” 하고 억지로 내 손을 잡는다. 그러다 날 빤히 바라보던 녀석이 내 목을 감싸고 있던 목도리를 풀어낸다.
“야, 너 지금 뭐하는...”
“같이 좀 하자, 춥다는 사람한테 매정하게 굴기야?” 하고 도리어 내게 큰 소리를 내며 풀어낸 목도리를 자신에게도 두르는 것이었다. 다 큰 남자 둘이서 빨간 목도리 하나를 함께 매고 있는 것이 어이없고 낯 뜨거워 어깨를 으쓱이며 “그럼 너 혼자 하던가-” 하고 내 목에 둘려진 부분을 풀어내려는데 “그건 싫어.” 하고 그가 목도리로 향하는 내 손을 막는다.
“날도 추운데 나만 목도리하고 있으면 미안하잖아, 같이 하고 가자.”
이 무슨... 마치 자기 목도리를 선심 써서 함께 둘러준 사람처럼 말하고 있어? 이거 내 목도리잖아? 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려다 어차피 말 해봤자 어떻게든 받아칠 것 같은 녀석의 눈동자에 질려버려 “...됐다.” 하고 말을 삼킨다.
“그래서 집은 어느 쪽인데?”
“응?”
“집 앞까지 데려다 줄게. 날도 추우니깐 같이 하고 가자며.”
“...정말?”
방금 전까지는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녀석의 얼굴이 한층 밝아져 있는 사실이 조금은 이상했지만 “...그럼 정말이지 거짓말이겠냐?” 하고 입술을 뗀다. 잠시였지만 밝은 녀석의 미소 탓인지 심장이 쿵쾅대었던 것도 같다. 그치만 아무렇지 않은 척 “저 쪽 길로 가면 된다고?” 라 말하며 그가 말해주는 곳을 향해 길을 걷기 시작했다.
[Side. 엔노시타]
만났으면 좋겠다, 는 마음과 만날 리 없겠지, 라는 마음이 한데 섞인 채 하교 길을 벗어나 버렸다. 머릿속으로 여러 번 시뮬레이션을 돌렸던 대로 정류장에서 내리자마자 야트막한 언덕을 걸어 올라가다 “미쳤어, 엔노시타 치카라. 제정신이냐?” 하고 자조적인 말을 내뱉으며 담뱃갑을 꺼내 한 개피를 집어들었을 때였다. 누군가의 시선, 그리고 담배..? 하는 목소리. 작은 음성이었지만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못 알아 들을 리가 없었다.
“후타쿠치 켄지 맞지?”
몇 번이고 보고 싶었던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아무렇지 않게 다가갔다. 일부러 과장된 행동도 해보며 후타쿠치와 함께 목도리를 매었을 땐 심장이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아, 이대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아요 하느님, 17번째 생일을 좋아하는 사람과 한 하늘 아래서 함께 목도리를 하고 귀가를 한다니- 이것만으로도 난 너무 행복해요-] 하고 마음속으로 주억거리며 억지로 끌어당겼던 손을 살짝 풀었다가 슬그머니 깍지를 껴본다.
“야, 뭐하는 거야?!” 하고 징그럽다는 듯이 후타쿠치가 날 흘겨보긴 하지만 손을 쳐내지는 않는다. 예상했던 대로다. 공고 학생인데다 조금은 양아치스러워 보일 수 있는 외양과는 달리 섬세하고 타인을 생각할 줄 알 것 같다는 것이. 내 예상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는 행동과 반응을 보이는 그에게 점점 더 빠져 들어간다.
이왕 이렇게 된 것 도박이나 한 번 해볼까 하는 심정으로 다시금 그의 이름을 불러본다.
“저기, 후타쿠치.”
“왜.”
“나 오늘 생일이거든.”
그 말에 “...뭐?” 하고 눈이 동그래져서 날 바라보는 후타쿠치에게 “그러니깐 함께 케이크 먹으러 가지 않을래? 물론 내가 살테니깐.” 이라 제안을 해본다.
내 예상대로 흘러만 간다면 잠깐 고민하다가 ‘야, 넌 친구도 없냐? 같이 가줄게.’ 하고 내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 뻔하다. 입술을 달싹이며 말을 꺼낼 듯 말 듯 하는 후타쿠치의 진지한 얼굴을 보며 나는 그저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
엔노시타 생일 축하해!!!!!
엔노츳키가 되었다면 ~ 내용, 엔노다이가 되었다면 ~ 내용! 하고 대강 생각해 둔 것이 있었는데 레점은 늘 제 예상을 빗겨나가죠_(ㅇㅅㅇ_ )_
엔니로로 뭔가 달달한게 써보고 싶었는데ㅋㅋㅋㅋㅋ이쯤되면 이게 엔니로가 맞는지 의심스러운 것입니다8ㅅ8)...
여튼 엔노시타 생일 축하해... 사...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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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 오이츠키] 크리스마스 기념
좋아하던 노래가 질려버렸다. 아니, 이 표현은 아닌 것 같다. 좋아하던 노래를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날이 많이 추워졌다. 얼어붙은 손을 호호 불며 시내를 걷는데 캐롤이 울려 퍼진다.
“츳키, 츳키! 곧 크리스마스라 캐롤 틀어주나 봐!”
그러게- 하고 대답을 하며 매장 쇼윈도 안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핏이 딱 맞게 떨어지는 모직 코트를 걸친 마네킹의 얼굴을 나도 모르게 누군가의 얼굴로 바꿔보았다가 고개를 흔들며 야마구치의 뒤를 따라 걷는다.
오늘은 오랜만에 배구 연습이 없는 날이라 집에서 쉬어야지- 라 생각했던 것도 같은데 난방을 최대로 틀어놨어도 방 안이 차갑고 크게만 느껴져 무작정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야마구치를 만나게 되었었다. ‘선배들 센터 시험이 한 달도 안 남았잖아~ 크리스마스도 곧 이니깐 겸사겸사 선물 좀 사러가려 하는데 츳키도 같이 갈래?’ 라는 말에 어차피 할 일도 없고 하니깐 ‘그래.’ 하고 따라 나섰다.
“뭘 사려고 여기까지 나온 거야?”
“추우니깐 목도리나 장갑 같은 것을 사는 것은 어떨까 하고. 아니면 한 달 동안 공부 열심히 하시라고 두꺼운 노트? 그것도 아니면...”
이마를 짚고 이것저것 생각하는 야마구치에게 “일단 센터 시험까지 시간이 좀 남았으니깐 오늘 뭐가 좋을지 봐놓고 다음번에 사도 괜찮지 않을까? 굳이 오늘 꼭 사야할 필요는 없잖아.” 라 말하자 “그래, 츳키. 오늘은 구경 먼저 하자!” 하고 웃으며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간다.
자신이 필요한 것을 사는 것도 아니고 선물을 해주기 위한 것인데도 저렇게 고민을 하는 모습에서 역시 야마구치의 마음이 따뜻하다는 것이 느껴져 뭔가 흐뭇한 감상이 흘러나온다. 하지만 굳이 그런 얘기는 하지 않고 그의 뒤를 따라 가게 내부로 들어섰다. 어떤 것이 좋을까... 하고 이것저것 만져보는 야마구치와 함께 물건들을 구경하다 목도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만났을 때 얇은 티 위에 더플코트를 입고 나오고선 춥다고 내게 앵겼었는데, 라는 생각이 들어 ‘혹시 감기 걸리신 것은 아니겠지...?’ 하며 나도 모르게 목도리를 만지게 된다. 그 날 이후 연락도 오지 않아 함께 듣던 노래마저 듣지 않아놓고 나서는 왜 보이는 것마다 당신과 연관을 짓게 되는 것일까, 나의 바보 같은 점에 머리가 흔들릴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더 바보 같은 것은 그런 생각을 하고서도 뭐가 예쁘다고 “이 목도리 선물하려고 하는데 포장 좀 해주실래요?” 라 멋대로 점원에게 말을 하는 내 입술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곱게 포장된 상자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는 한숨을 짓는다.
‘왜 이걸 산걸까, 나 바보 아냐? 멍청한 것도 정도가 있지, 보고 싶다고 먼저 연락도 못 하면서 이건 사서 어쩌려고, 줄 수나 있을까? 연습이 많은 것일까? 저번에 춥다 말한게 응석 부린 것이 아니라 정말 몸살 나려고 으슬으슬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센터 시험이 다가오니깐 한 달 동안 공부에 집중하려고 연락을 안 하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대학에 들어갔을 때 더 이상 나와 만나지 않으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다 점점 안 좋은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자신의 마이너스적인 사고에는 진저리가 날 정도였지만 정말로 저런 답을 들을까 두려운 마음이 없잖아 있는지 핸드폰의 전화록 1번으로 저장되어 있는 이름만 뚫어지게 바라볼 뿐 전화를 누르지 못 한 채 침대에 누워버린다.
“왜 연락이 없는 거에요...”
당연히 대답이 들릴 리 없음에도 어떤 말이라도 들릴까 귀를 기울이며 몸을 뒤틀고는 나도 모르게 선잠에 빠져 들었다.
잠을 깨운 것은 전화벨 소리였다. 며칠 동안 일부러 듣지 않으려 했던 노래가 귓가를 간지럽히는 것에서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군지 단번에 눈치 챘다. 받아도 되는 것일까, 하고 고민하다 “네...” 하고 전화를 받자마자 “케이쨩?” 하는 목소리가 귓가에 감긴다.
“나야, 오이카와.”
“알아요.”
모를 리가 없잖아요, 당신의 목소리가 며칠 동안 듣고 싶었는데, 당신의 전화벨 소리만 이 노래인데.
“잘 있어?”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안부를 묻는 그 목소리에 화가 날 것도 같았지만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잘 있어요.”라 말을 한다.
“난 잘 못 있었는데.”
“...왜요?”
“케이쨩이 보고 싶어서.”
말은 잘 하지, 매주 목요일마다 우리 학교 담벼락 앞에 서있었으면서 보고 싶다는 마음 가지고 찾아올 수도 있었잖아요, 아니면 전화라도 하면 되잖아요. 그것도 힘들다면 문자도 보낼 수 있는 거잖아요-
하고 싶은 말은 산더미처럼 많았지만 “그래요?” 라 말할 뿐이었다. 생각했던 말을 다 내뱉는 것 자체가 상대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는 것 역시 잘 아니깐.
“우리 만날 수 있을까? 잠깐이면 되는데.”
“어디서요?”
“...사실... 지금 케이쨩 집 앞이야.”
그 말에 “...네?” 하고 몸을 일으킨다. 창밖을 바라보자 손을 흔들며 ‘여기야, 케이쨩.’ 하는 그의 모습이 보인다. 책상 위에 놓인 상자를 집어 들고 빠르게 집 밖으로 나가 오이카와상에게 달려가 “언제부터 여기 있었던 거에요?” 하고 손을 잡는다.
“방금 왔어.”
하지만 그 말과는 달리 손이 차갑고 코 끝이 빨갛다.
“...지금 온 거 아니잖아요, 손이 이렇게 차가운데. 오늘 날도 추운데 장갑도 안 끼고 뭐에요 이게,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곧 센터 시험도 다가오는데 아프기라도 하면....”
“괜찮아, 아파도. 케이쨩 얼굴만 보면 오이카와상은 무적이 됩니다!” 하고 양손으로 브이자를 그리는 모습에 “뭐에요 그게-” 하고 눈을 흘겨보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다.
“실은 며칠 동안 뭐 좀 하느라 연락을 못 했었어, 케이쨩. 미안미안-” 이라 말하고는 “자, 케이쨩 선물이야-” 하고 뭔가를 내민다.
“뭐에요?” 라 묻는 내 손바닥에 오이카와상이 올려놓은 것은 비뚤배뚤하긴 하지만 직접 만든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 키링이었다.
“...에? 혹시 오이카와상이 만든 거에요?”
“응. 저번에 케이쨩 열쇠 잃어버릴 뻔 했었단 말이 생각나서, 감기 걸려 학교 못 나가나는 김에 만들어 봤는데 어때?”
“....오이카와상 그 날 정말 추웠던 거에요? 감기 걸렸...아니 왜 그런 말을 안 했어요?”
“...미...미안! 근데 감기 걸렸다고 하면 케이쨩 걱정할거잖아! 병문안 온다고 할 것도 뻔하잖아! 왔다가 케이쨩마저 감기 걸리면 안 되니깐...” 하고 우물쭈물해 하는 오이카와상의 모습이 귀엽게만 보여 “...뭐에요, 오이카와상.” 하고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럼 이거 잘 샀네요. 오이카와상, 선물이에요.”
“응?”
“이젠 감기 걸리지 말아요. 목도리- 받아요.” 라 말하며 상자를 건네자 “...케이쨩...” 하고 오이카와상이 울먹거리는 소리를 낸다.
“고마워- 오늘 정말 최고의 크리스마스 이브야.”
그 말에 어라? 하고 핸드폰을 꺼내 날짜를 확인해본다.
12월 24일, 정말 크리스마스 이브다.
“원래 내일 말하려고 했는데, 오늘 말해버릴래!”
뭘 말하려구요? 하고 오이카와상을 바라보는데 고개를 살짝 들어 올린 그의 얼굴이 눈 앞으로 다가온다.
“좋아해, 케이쨩. 올해도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평생. 그러니깐 케이쨩- 이 선물도 받아줄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가 내미는 금속 물체를 보고 잠깐 놀랐다가 나도 모르게 울음 섞인 웃음이 터져 나온다.
“키링을 선물한 이유가 이거였던 거에요? 근데 벌써 진학교 정해진 거였어요?”
“물론이지, 나 이래봐도 배구 특기자로 원하는 학교 되었다구! 에- 근데 묻기만 하고 안 받을거야?”
“받을 거에요, 받아. 쓰려면 2년은 걸릴텐데 괜찮겠어요?”
“괜찮아, 괜찮아. 심심할 때 놀러 와도 괜찮고.”
오이카와상의 온기가 아직 남아있는 열쇠 하나를 받아들고 키링에 끼워 넣는다.
“이제 받았으니깐 케이쨩 나한테서 못 벗어나는 거야!”
“못 벗어나긴요. 이거 버리면 벗어나는거죠.” 하고 어이없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면서도 오이카와상의 손을 잡는다.
아까보다는 조금 더 온기가 느껴지는 그 손을 꽉 잡고 “크리스마스 계획 있어요?” 라 묻는다.
이번엔 내가 먼저 약속을 잡아야지 하고.
=
크리스마스에 맞춰 썼어야 했는데 너무 늦게 쓰기 시작했다8ㅅ8 반성...8ㅅ8)>
맨 첫 문장인 '좋아하던 노래가 질려버렸다.' 는 며칠 전 진단메이커로 돌려 나왔던 연성 첫문장입니다, 원래는 다른 방향의 글을 쓰려 했는데 크리스마스니깐.. 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쓰기 시작했는데ㅋㅋㅋ한 시간 안에 쓰긴 했는데 쓰고나니 크리스마스 지난 것wwwwww 심지어 여긴 이브가 배경인 것wwwww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것wwwwww
...네 반성합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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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깐, 이와쨩. 잘 부탁해.”
양 손으로 V자를 그리며 웃는 쿠소카와의 면상에 배구공을 날려버릴까 했지만 내기에서 진 것은 진 것이다.
“젠장, 쿠소카와. 귀찮은 일은 다 나 시키고.”
투덜거림이 끊이지 않았지만 시키는 대로 해야지 뭘 어쩌겠어, 라 중얼거리며 부실에서 홀로 나온다.
‘달리기를 해서 이긴 사람 부탁을 들어주는거 어때?’ 라 제안하는 오이카와의 말에 넘어간 자신이 바보였다.
“갑자기 뭘 하자는거야.” 라 묻는 자신에게 “그럼 스타트!” 하고 먼저 출발한 녀석에게 배구공을 던지며 “쿠소카와!!!!” 하고 달려들긴 했지만 스타트가 늦은 탓인지 져버린 것이었다.
그런 오이카와가 자신에게 부탁한 것은 ‘카라스노가 연습하는 것 좀 찍어와 달라.’는 것이었다.
“뭐 하러 찍어 오라는 거야?”
“전체적으로 어떤 연습을 하는지 보고 싶어서 그래. 이와쨩도 궁금하지 않아?”
당연하다는 듯이 묻는 오이카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하나마키, 마츠카와의 모습을 보고도 ‘별로.’ 라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하여간 귀찮게!”
짜증을 내면서도 ‘오이카와 녀석 아직도 카게야마에게 신경 쓰는 것일까?’ 라는 걱정이 함께 밀려온다. 버스 정류장 앞에서 조금 튼 손을 바라보다 카라스노 고등학교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탄다. 겨울 방학이라 그런지 학교로 향하는 길이 한산하다. 어디어디, 뭘 중심으로 찍어 가면 쿠소카와 녀석이 맘에 들어 할까, 라는 생각을 할 때였다.
“...혹시 세죠의 이와이즈미상?”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올렸을 때 나도 모르게 놀라 침을 꿀떡 삼킨다. 자신이 정찰하러 가는 팀 멤버와 마주칠 줄은 몰랐는데.
“...어, 그래, 맞아. 넌 그러니깐...”
카게야마랑 상성이 안 좋은... 누구랬더라. 갑자기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미간을 찌푸리며 오이카와가 말했던 것을 떠올리려 애를 쓸 때였다.
“츠키시마 케이. 카라스노의 미들블로커입니다.”
아 맞다, 그런 이름이었지. 뭔가 반짝반짝한 이름이라 생각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머리칼도 금빛인 것이 이름에 딱 맞는 외형이다.
“어디 가세요? 혹시 저희 학교?”
츠키시마의 물음에 자신도 모르게 ‘어떻게 알았어?’ 라 물을 뻔 했지만 다행히 입 밖으로 그 말이 튀어나오진 않았다. 대신 “아, 아니- 그냥 지나가던 길이었는데... 너 본 김에 카라스노 좀 가볼까? 귀여운 후배도 볼 겸. 하하하-” 하고 대답한다. 하지만 어색한 웃음 탓일까, 아니면 거짓말을 잘 못 하는 자신의 성격 탓일까, 츠키시마의 눈매가 가늘어짐과 동시에 매서워진다.
“카게야마 오늘 연습 못 나오니깐 나중에 오세요.”
“응?”
버스 하차 벨을 누르며 리듬감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차분한 목소리로 “기말 시험에서 낙제하는 바람에 보충 수업 받거든요. 오늘이 보충 수업 날이라, 아마 못 올거에요.”라 말한다.
“그리고 이와이즈미상, 거짓말 다 티 나거든요? 다음에 정찰할 땐 좀 연습하고 오세요.” 라 말하며 계단을 내려가는 츠키시마를 멍하니 바라보다 차 문이 닫힌 다음에야 정신이 들어 “자..잠깐만요!” 하고 외치지만 이미 차가 출발을 해 내릴 수가 없었다. 바로 하차 벨을 눌러 그 다음 역에서 내리자마자 카라스노 고등학교의 정문을 향해 달린다. 달리면 달릴수록 머릿속을 가득 채운 의문이 점점 더 커져만 간다. 분명 정찰을 하러 억지로 이곳에 온 것인데, 방금 전까지 이름도 몰랐었던 키 큰 선수 한 명이었을 뿐인데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것일까. 그 답이 알고 싶다.
구부정하게 허리를 살짝 굽히고 걷는 사람을 발견하자마자 “츠키시마!” 하고 큰 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러본다.
“왜요?”
“저기, 그래, 맞아. 네 말대로야. 네 말대로 사실은 정찰하러 온 거였는데, 그만 둘래.”
자신이 생각해도 허둥대며 말이 헛나오는 것이 폼 나지 않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어차피 카게야마도 안 나온다니깐 너도 오늘 연습 쉬면 안 될까?”
“...네?”
미간을 찌푸리며 ‘대체 이 사람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라는 표정을 짓는 츠키시마에게 “널 알고 싶어졌어. 내가 이곳까지 왔던 이유를 다 엎어버릴 정도로, 이름도 잘 기억하지 못 했던 너와 얘기가 하고 싶단 생각이 들어 달려왔단 말야. 그러니깐 오늘은 나랑 함께 시간을 보내자. 대신 다음 시합 때 살살해줄테니깐.”이라 떠벌거린다.
“무슨 소리에요, 시합에서 대충 할 사람이 아니잖아요, 이와이즈미상은.”
의외의 대답에 고개를 갸우뚱하자 “뭐, 됐어요. 오늘 연습하기 귀찮았는데 마침 잘 되었네요. 시합은 진심으로 하시고, 대신 맛있는 딸기쇼트케이크 하나 사주세요. 급하게 나오느라 밥을 못 먹었거든요.” 라 말하며 츠키시마가 교문 쪽으로 몸을 틀어 걷기 시작한다.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 전개에 또 다시 멍하니 츠키시마의 뒷모습만 바라보는데 “뭐해요? 안 사줄거에요?” 라 츠키시마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묻는다.
정리되지 않은 사고의 흐름 속에서 “...아, 아니 사줄거야!” 라 대답하며 그를 향해 달려간다.
=
* 오늘도 대지각을 했습니다ㅇㅅㅠ) 반성 또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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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 우카츠키] 전력 60분 주제 : 목도리
열 살 연하인 자신의 연인은 평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마음 내킬 때 불쑥 자신에게 찾아오곤 한다.
그래, 마치 지금처럼.
“오랜만이에요, 우카이상.”
조금은 지친 표정의 츠키시마 케이가 사카노시타 상점 문을 열고 들어 온 것은 금요일 저녁 여섯시였다.
“어? 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 오늘 오후 수업 있는 날인데 벌써 도착한 것이 수상한데?”
“만나서 반갑다는 말이 더 먼저 아니에요? 이 주 만에 얼굴 보는 거잖아요. 기뻐해 달라구요.”
평소답지 않게 응석을 부리는 것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츠키시마의 말대로 이 주 만에 직접 만났다는 사실이 기쁘긴 하다. 자신도 마찬가지지만 츠키시마 역시 귀염성이 없는데다 타인과 관계를 맺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학 입학을 앞두고 했던 약속 탓인지 그 귀찮음을 무릅쓰고 매일 전화나 문자를 해준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인데 이렇게 시간을 내서 찾아와주는 것은 더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카이상, 다리 좀 이 쪽으로.”
어느 새 자신의 옆에 츠키시마가 의자를 끌고 와 앉아 있었다.
“뭐 때문에?” 라 퉁명스레 대답하면서도 츠키시마가 원하는 대로 그를 향해 몸을 틀자 “감사합니다.” 하며 내 허벅다리에 머리를 대고 눕는다.
“힘들게 왜 이렇게 누워. 앉은 채로 이렇게 누우면 몸에 안 좋아, 아침에 이부자리 정리 안 하고 내려왔으니깐 2층 내 방에 가서 누워있어.”
“싫어요, 여기가 더 좋아.”
단호하게 말하며 고개를 더 파묻는 녀석 때문에 한숨이 밀려나오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의 옆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연인의 행동이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래, 그래. 네가 좋다면 어쩔 수 없지.”
사귄지 2년이 조금 넘은 자신의 연인 츠키시마 케이는 차분하고 말수가 적지만 고집이 센 편이다. 스킨십을 좋아하면서도 티를 내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자신이 담배를 피면 “몸에 안 좋아요!” 하고 화를 내지만 “그럼 나가서 피울게.” 라고 자리에서 일어나면 “그건 싫어요. 내 옆에 있어줘.” 하고 손을 붙잡는 엉뚱한 면도 있다. 달콤한 딸기쇼트케이크를 좋아하면서 혼자 케이크 집에 들어가는 것은 싫어하고,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해 늘 헤드폰을 달고 살지만 자신과 만날 땐 헤드폰을 아예 들고 나오지 않는다. 언젠가 한 번 “왜 나와 만날 땐 헤드폰을 안 끼고 나와?” 라고 물어봤던 적이 있다. 잠시 대답하기를 머뭇거리던 연인의 대답은 “우카이상의 말 한 마디, 숨소리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면 음악 들을 여유 같은 건 없거든요.” 였다. 그 때의 대답을 생각하면 지금도 헤벌쭉한 웃음이 튀어나온다. 물론 이 말을 그 해 연말 기념 술자리에서 말했다가 “애인 자랑이냐?” 하는 시마다와 타키노우에의 따가운 눈총을 받긴 했지만.
머리를 쓰다듬던 손의 방향을 조금 틀어 귓가를 매만지는데 살짝 열이 올라있다. ‘오랜만에 나랑 함께 있어서 흥분한거야?’ 하는 조금은 아저씨스러운 농담을 하려다 뭔가 이상하다는 것이 느껴져 ‘설마...’ 하고 츠키시마의 이마를 짚는다.
“야, 너!” 하고 큰 소리를 내며 이마를 손바닥으로 탁 쳐내자 “아파요.” 하고 츠키시마가 짜증섞인 목소리로 대꾸한다.
“네가 지금 짜증 낼 때야? 빨리 일어나.”
“싫어요. 지금 딱 노곤노곤하니 딱 잠 들 참이었는데.”
“앙탈 부리지 마. 너 지금 열나잖아. 빨리 나가면 진료 받을 수 있으니깐 얼른 일어나.”
칭얼거리는 츠키시마를 억지로 일으켜 세워 더블코트의 단추를 잘 여며줄 때였다. 뭔가 위화감이 느껴져 한 쪽을 유심히 바라보다 자신도 모르게 “...어라?” 하고 엇나간 소리가 나와 버렸다.
“왜요?”
“...아, 너 내가 전에 줬던 목도리 안 하고 왔냐?”
“아.”
그제야 뭔가 허전하다는 듯이 목을 매만지던 츠키시마가 “죄송해요, 며칠 전에 선배가 빌려 달래서 건네줬는데 받는 것을 깜박했어요.” 라 태연히 대답을 한다.
“잘 하는 짓이다. 오늘 같이 추운 날 목도리도 안 하고 내려오니깐 열나는 것 아냐. 화는 이따 낼 태니깐 일단 나오고 보자.”
입을 비죽이며 “제 잘못이 아니에요. 정확히 말하자면 선배 멋대로 제가 하고 다니는 목도리를 빼앗은 거에요.” 라 중얼거리는 츠키시마의 손을 맞잡아 자신의 주머니 안으로 넣는다. 평소엔 오히려 서늘한 연인의 손이 뜨거운 것을 보아하니 제법 열이 나는 것 같아 자신의 목도리를 풀어 츠키시마에게 매준다.
“담배 냄새.”
“투덜대지 마. 병원 간다고 나섰다가 오히려 감기 더 심해지는 것 보단 낫지 뭘 그래.”
입술을 쭉 내밀고 맘에 안 든다는 듯이 미간에 힘을 주고는 있지만 추운 날씨 탓인지 점점 몸을 웅크리며 목도리를 더 조이는 연인을 보면서 ‘귀엽다.’ 라 생각하지만 차마 그 말은 입에 담지 못 한 채 살짝 미소만 짓는다.
병원에서 돌아오자마자 2층 방에 난방을 넣은 뒤 폭신한 솜이불을 꺼낸다.
“어서 누워.”
“...환자 취급 하지 마세요.”
“환자 맞잖아. 그나마 심한 것이 아니라니 다행이긴 하지만.”
츠키시마를 이불 안으로 밀어 넣은 뒤 다시 상점으로 내려와 평소보단 이른 마감 정리를 한 뒤 황도 복숭아 캔 하나를 집어 들고 조심스레 계단을 올라간다. 내 앞에선 괜찮은 척을 했지만 분명 아픈 것이 틀림없다. 진료를 기다리며 병원 소파에 앉아 있을 때 내 눈치를 살살 살피면서 마른기침을 해댔으니깐. 문 틈 사이로 방 안을 살짝 들여다본다. 역시나 몸이 안 좋은 것이 틀림없다. 솜이불을 꼭 부여잡은 채 볼이 빨간 녀석을 바라보다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츠키시마, 몸 좀 일으켜볼래?”
츠키시마의 머리맡에 앉아 이마를 짚으며 묻자, 순순히 상체를 일으킨다. 혹시라도 힘이 없어 넘어질까 걱정이 돼 츠키시마의 등을 받치고 앉는다. 티셔츠 사이로 열기가 전해지는데다 오랜만에 츠키시마의 체취를 맡자 끌어안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하지만 아픈 사람에게 뭘 어쩔 수도 없고, 머릿속으로 피보나치수열의 값을 나열할 때였다.
“고마워요, 우카이상.”
작지만 감사의 인사를 하는 츠키시마의 말에 “정말 아픈가보네. 내가 말하는 대로 몸을 일으키고 고맙다는 말도 할 줄 알고.” 라는 말이 튀어 나온다.
“놀리지 마세요.”
“놀리는 거 아냐. 황도 좀 먹자. 달고 부드러우니깐 이건 먹을 수 있지?”
아이를 달래듯이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권하자 “응, 먹을 수 있어요.”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캔에서 꺼낸 황도를 1/3 크기로 잘라 한 조각씩 입 앞에 갖다 대자 츠키시마가 느릿하게 입술을 오물거리며 하나씩 받아먹기 시작한다.
“약 먹으려면 밥도 먹어야할텐데.”
“괜찮아요, 이것만 먹고 자면 낫겠죠.”
태평하게 대답하는 연인의 말에 ‘너무 오냐오냐 받아주기만 한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어 혀를 차면서도 “그래, 그렇게 낫기만 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라 말한다.
신기하게도 한잠을 푹 자고 일어난 츠키시마의 체온은 정상 범위로 떨어졌다. 여전히 기침은 간간히 하지만. 체온계의 눈금을 보고 신기하네- 라 중얼거리는 자신에게 “우카이상 덕분이에요.” 라 말하며 입술을 살짝 붙였다 떼는 것 역시 평소의 츠키시마다.
이불을 반듯하게 접어 방 한 쪽 구석으로 밀어 넣으며 츠키시마에게 “이번엔 며칠 있다가 갈 거야?” 라 묻는다. 잠깐 고민하는 듯 시계를 바라보던 츠키시마가 “지금 올라가려구요. 오늘 오후에 팀플하기로 해서...” 라 말한다.
“뭐...? 그럼 왜 왔어?”
“당연히 보고 싶어서 왔던거죠. 우리 2주나 못 봤잖아요.”
“...너 말야, 바쁘면 바쁘다고 말하란 말이야.”
“죄송해요.”
목소리가 기어들어가는 츠키시마에게 “미안하라고 한 말이 아니야. 오히려 나야 네 얼굴 봐서 좋은데, 네가 아프니깐 걱정 되서 그런거야.” 라 말하며 이마를 툭 치고 문 쪽으로 향하다 다시금 돌아서서 입을 뗀다.
“내 트럭으로 태워다 줄테니깐 아침 먹고 출발하자.”
“바쁜데 그러실 필요 없어요.”
“네가 아픈데 일이 손에 잡히겠냐? 그리고 이거.” 하며 상자 하나를 내밀자 츠키시마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며칠 전에 시내 나갔다가 목도리 사놨거든. 계속 하고 다니던게 좀 낡은 것 같아서. 이따 갈 때 이걸로 하고 가, 아직 포장도 안 풀었으니깐 담배 냄새는 안 날거다.”
멍하니 상자 안을 바라보던 츠키시마가 “싫어요.” 하고 내게 다시 상자를 내민다.
“야, 너 그러다 열 또 나면 어쩌려고 그래.”
“이건 필요 없어요. 어제 빌려줬던 것 하면 되니깐, 이건 우카이상이 하세요.”
퉁명스럽게 말하면서도 귓가가 빨개진 연인이 방문 밖으로 나선다.
하여간 귀엽다니깐- 이라 혼잣말을 하며 “그래, 빌려줄테니깐 감기나 걸리지 마.” 하고 츠키시마의 옆구리를 쿡 찌른다. 하지 마세요! 하고 짜증을 내면서도 낡은 목도리를 꽉 부여잡은 연인에게 “안 할 테니깐 화내지 말고.” 라 말하며 손을 잡자 “우카이상, 나 놀리는거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 라 툴툴거리면서 내 어깨에 머리를 살짝 기댄다. 츠키시마 특유의 달콤한 향이 코끝을 자극해 키스하고 싶다, 라 생각할 때 “그래도 그런 우카이상이 좋으니깐.” 이라 말하며 츠키시마가 입을 맞춰온다. 부드러운 입술의 감각을 느끼며 오늘 츠키시마네 자취방까지 가는 김에 거기서 신세 질까, 하는 발칙한 생각이 들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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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늦어버렸네요8ㅅ8 의욕이 넘쳤습니다... 여하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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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만 헤어져요.”
늘 연애에서 수동적인 입장이었던 자신이 단 한 번 연인에게 제안했던 것은 이별이었다.
지금까지 제안을 하는 입장이었던 상대는 처음으로 받은 내 요청에 놀람과 동시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오이카와상도 알고 있잖아요. 우리 두 사람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호감을 느꼈음에도 그 감정을 입에 담지 않은 채 상대방이 내게 고백을 해주기만 바랐던 어린 자신을 눈치 채고 “우리 사귈까?” 하고 물어봤던 다정한 오이카와상의 얼굴이 지금의 실망감 어린 얼굴과 겹쳐진다.
하지만 그는 내게 끝까지 다정했다.
“몇 년을 사귀어도 전 변하지 않았어요. 늘 제게 잘 해주는 당신에게 전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요. 당신에게 애교를 부리지도 않고 스킨십도 선을 그어버린 채 여러 해가 지났잖아요. 당신도 내게 질렸을 것이 틀림없어. 그러니깐 이젠 헤어져요. 더 이상은 시간 낭비야.”
내 억지와도 같은 말에 잠깐 한숨을 쉬긴 했지만 “...네가 원한다면 헤어져도 괜찮아.” 하고 웃으며 내 손을 놓아줬다.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연애라는 것이 처음이었던 만큼 이별 역시 처음이었다.
소설에서 흔히 나오는 이별의 과정을 살펴보면, 연인들은 헤어진 그 시점엔 아무렇지 않다가 집에 돌아오는 그 순간부터 괴로워하고 평소와 같은 행동도 하지 못 한 채 조금씩 일상이 무너져 갔다.
하지만 자신은 달랐다.
오이카와상이 없어도 매일 같이 제시간에 일어나 밥을 먹고,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쉬었다.
그렇게 하루가 흐르고 일주일이 흐르고 한 달이 흘러도 내 일상은 변한 것이 없었다.
다만 함께 마시던 커피가 줄지 않는다는 것, 그것만이 신경 쓰였다.
나와 오이카와상의 연애는 열정적으로 불타오르는 사랑에 기반한 것 이라기보다는 늘 당연하다는 듯이 붙어있는 일상과도 같았다.
대학에 들어가는 대신 사회생활에 먼저 뛰어 들었던 오이카와상은 근무지 근처에 작은 오피스텔을 하나 얻어 살고 있었다.
“네가 지원한 대학 말이야. 여기서 가깝잖아? 그러니깐...”
“같이 살자구요?”
오이카와상은 내 되물음에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고는 날 바라봤었다.
내게 오케이 사인을 갈구하는 그 눈빛이 나쁘지 않아 “좋아요.” 하고 대답하며 우리는 함께 살게 되었다.
사귄지 두 달이 되던 때였었다.
그 날부터 오이카와상은 내게 끝없는 관심을 퍼부어 주었다.
추울 때면 늘 내 오른손을 붙잡아 자신의 외투 주머니 안에 넣고 손깍지를 끼며 따뜻함을 전달해 주었고, 내가 과제를 하다 지쳐 쓰러져 잠이 들면 감기라도 걸릴까 절절매며 이불을 끌어와 덮어줬었다.
아침마다 커피를 내려 마시는 자신의 버릇에 맞춰 스케쥴을 조정하고, 매달 마지막 주 주말마다 케이크를 직접 만들어줬다.
몸을 섞지는 않으면서 온기를 원하는 자신 때문에 늘 품에 자신을 안아주고 손을 꽉 잡아줬었다.
그래 그런 일상적인 일만 있었기에 헤어져 따로 살게 되었어도 내 하루하루는 변화가 없던 것이다.
-
변화가 없다 생각했었는데 스스로 이별을 고한 지 세 달이 흐른 지금, 나는 어째서 오이카와상과 함께 보냈던 사소한 기억들을 붙잡고 그의 회사 앞까지 찾아온 것일까.
내 일상은 그와 헤어지기 전과 지금 모두 다를 바가 없는데, 술에 취해 발길을 이 쪽으로 돌린 것일까.
늦은 시간인데도 건물 전체의 빛이 꺼지지 않아 있었다.
월말이니 일이 바쁜 것이 틀림없다.
오이카와상도 저 안에서 일을 하고 있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몸을 틀 때 였다.
“츠키시마?”
감기가 걸린 듯, 코맹맹이 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눈치 채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루 이틀 부대끼며 지냈던 것이 아니기에 더 쉽게 알아차린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르는 척 한 걸음을 내딛었다.
“츠키시마.”
조금 더 큰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곧 움직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가지 말아줘.” 하는 소리, 허리를 감싼 뜨거운 팔이 날 움직일 수 없게 했다.
“...오이카와상.”
“그 날 네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었어, 네가 헤어져달라고 했을 때 헤어지는 것이 아니었어.”
그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린다.
날 바라보는 오이카와상의 얼굴이 두 눈에 한가득 밀려들어온다.
그리워했다면 그리워했고 그립지 않았다면 그립지 않았을 그 얼굴.
오이카와상- 하고 그를 부르려던 때 따발총마냥 그가 말을 떠벌거리기 시작한다.
“너와 함께 커피를 마시던 버릇 때문에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블렌드로 커피를 내려 마셔도 그 맛이 나지 않았어. 네 손을 꽉 잡고 자던 버릇 때문에 무언가 따뜻한 것을 쥐지 못 하면 잠이 들지 못 하는데 어떤 걸 잡아도 그 느낌이 들지 않아 잠도 오지 않았어. 매달 말일마다 케이크를 만들던 버릇 때문에 뭔가 만들고 싶은데 만들어도 함께 먹어줄 사람이 없단 것이 외로웠어. 하지만 그것보다 더 슬펐던 것은...”
말을 멈추고 날 바라보는 그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오는 것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
늘 웃는 모습만 보여주던 오이카와상도 우는구나.
“내 옆에 네가 없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어.”
“오이카와상도 우네요.”
“...지금 그런 말이 나와?”
샐쭉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오이카와상은 날 놓지 않았다.
“그러니깐 내 옆으로 다시 돌아와 줘.”
“제가 원한다면 헤어져도 괜찮다면서요.”
“그랬었지. 근데 생각해보니깐 헤어진 이유가 너무 어이가 없었어. 난 네 애교를 바란 적도 없고 네게 질린 적도 없었는데 네 멋대로 그럴 것이라 생각하고 이별하자 말한거잖아.”
그 말에 대답이 궁해진다.
대신 오이카와상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낸다.
“미안해요. 저 때문에 울게 만들어서.”
“네 그런 점이 좋아.”
뜬금없는 말에 “...네?” 하고 물으며 오이카와상을 바라본다.
“네 엉뚱한 점도 좋고, 애교도 못 부리는 딱딱한 성격이 좋은거라구. 정해진 대로 행동하지만 은근히 무른 점도. 그러니깐 츠키시마, 우리 다시 사귀자.”
대체 어떤 맥락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싫지만은 않다.
또 다시 나는 못 이기는 척 그래요, 다시 사귀어요. 라 대답할 것이 틀림없다.
처음 사귀던 때와 다를 바 없이 오이카와상이 고백했으니깐, 이라는 말로 넘어가며 똑같은 일상을 보내고 또 다시 내가 먼저 이별을 고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때마다 지금처럼 재회해 다시 사귈래? 라는 말을 반복하며 끝없이 인연을 이어나갈 것이 틀림없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이번엔 내가 먼저 오이카와상의 손을 끌어당겨 외투 주머니 안으로 밀어 넣는다.
=
* 재회를 보자마자 이별부터 떠올렸던 것이 문제였을까요ㅇㅅㅇ) 글이 너무 안 써져서 애먹었습니다8ㅅ8 늦게 시작하기도 했지만... 한시간 반을 훌쩍 넘겨버렸네요8ㅅ8 죄송합니다아아아8ㅅ8)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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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 카게츠키] 전력 60분 주제: 케이크
햇살이 따뜻한 9월의 어느 날, 따사로운 햇살만큼 부드러운 미소의 소년을 만나게 되었다.
[카게츠키] 주제 : 케이크
# 1
제빵사인 아버지는 빵만큼 가족도 사랑했기에 삼층집을 사 1층은 가게로, 2,3층은 가정집으로 사용했다. 그 날도 고소한 냄새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엄마, 나 바게트!”
바게트를 목청 높게 외치며 거실로 뛰어 들어가는 자신을 껴안으며 어머니는 “함께 빵집으로 내려갈래?” 하고 묻는다.
“응! 같이 내려갈래! 내가 고를거야!”
“그래, 그래. 그럼 내려가자, 토비오.”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조심스레 계단을 내려간다. 일 년 전, 아버지께서 새로 개발하신 빵을 제일 먼저 맛보겠다고 뛰어 내려가다 굴러 떨어진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그 날 이후 계단을 내려갈 때는 조금 긴장을 하게 된다.
평일 오후 세 시, 점심시간이 지난 터라 그런지 가게 안은 한산했다. 막 구워져 나온 크로와상을 정렬하던 아버지가 자신과 어머니를 보고 웃는다.
"토비오, 오늘은 무슨 빵을 먹으려고 내려왔지?"
"아버지가 구워주신 바게트요! 겉은 윤기가 좌르르 흐르면서 바삭하고 안은 폭신폭신해서 입에 넣자마자 사르르륵 녹아드는 바게트가 먹고 싶어요."
"원 녀석도, 그럼 골라볼래?" 하고 아버지가 집게와 트레이를 건넨다. 신난다! 하고 설레하는 자신의 머리를 아버지가 쓰다듬을 때였다. 짤랑하는 벨소리와 함께 두 소년이 손을 잡고 들어온다. 가게 내부가 익숙한 듯 트레이를 든 소년이 동생인 듯한 소년의 손을 꼭 부여잡고는 우유식빵 하나와 둥근 호밀빵 하나를 집는다.
"케이, 뭐 먹고 싶은 빵 있어? 형이 하나 사줄게."
역시 예상했던대로 트레이를 들고 있던 쪽이 형이었다. 입술을 오물거리며 형의 손을 꽉 잡고 있던 케이라는 소년이 "딸기..." 하고 말하다 고개를 저은 뒤 "슈를 먹을래." 하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푹 숙인다.
"딸기케이크가 먹고 싶다면 먹어도 괜찮아, 케이."
"그치만 형아 돈..."
"괜찮다니깐. 형은 케이가 맛있게 먹는 모습만 봐도 좋아서 그래. 슈도 사주고 딸기케이크도 사줄게."
싱긋 웃으면서 슈 두 개를 집고는 케이크 진열장으로 향하는 형의 옷자락을 동생인 소년이 붙잡는다.
“괜찮아, 형. 난 슈만 있어도 돼.
그 모습을 지켜보다 어쩐지 마음이 따뜻해져 어머니의 소매를 붙잡아 시선을 끈다. “왜 그러니, 토비오?” 하고 묻는 어머니의 귓가에 “저 일주일 동안 빵 안 먹어도 괜찮으니깐 저 친구한테 딸기쇼트케이크 하나 선물해 주고 싶어요.” 하고 속삭인다. 그 말에 “토비오, 착한 아이네.” 하고 어머니가 머리를 쓰다듬는다.
딸기 쇼트케이크 하나를 예쁘게 포장한 어머니가 “그럼 네가 저 아이에게 가져다 줄래?” 하고 묻는다. 대답 대신 케이크 박스를 들고 소년 앞에 다가가 “선물이야.” 하고 건넨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자신과 형을 올려다보던 소년은 “감사합니다.” 하고 말하는 형의 말을 따라하듯 “감사합니다.” 하고 고개를 꾸벅이며 케이크 박스를 받아든다.
“난 이 빵집 외아들 카게야마 토비오라고 해. 네 이름은 뭐야?”
“...나...내 이름은 츠키시마 케이. 저..저기 토비오쨩, 케이크 고마워.”
고맙다는 말과 함께 함박 웃음을 짓는 츠키시마 케이의 미소에 잠시였지만 가슴이 두근거렸던 것도 같다.
# 2
그로부터 며칠 지난 날이었다. 그 날 따라 유난히도 마롱 케이크와 밤 페스츄리가 이른 시간에 다 팔려버렸다. 준비해놨던 밤도 다 떨어져 급하게 시장으로 향하면서 아버지는 자신에게 빵집을 맡겼다. 아버지가 나가신지 십여분 쯤 흘렀을 때부터 부슬부슬 내리는 비 때문인지 손님의 발걸음이 뜸해졌다. 조금은 심심한 기분이 들어 계산대 앞에서 구슬치기를 하며 놀고 있을 때였다. 흐릿하긴 하지만 우산도 없이 길가에서 서성이는 소년이 보였다. 자신의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지난 번 자신에게 예쁜 미소를 지어줬던 케이가 틀림없었다. 깜짝 놀라 큰 우산 하나를 들고 뛰어나가 “케이쨩!” 하고 부른다. 자신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것일까 케이가 고개를 휙 돌려 자신을 바라본다.
“비 오는데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여기서 서성이고 있어? 어서 들어가자.”
감기라도 걸릴까 걱정이 되어 욕실을 사용해도 괜찮다 얘기했지만 케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신 무릎을 끌어 앉고 오들오들 떨고 있어 커다란 수건을 덮어주고는 비에 젖은 머리칼을 말려준다. 이름에 걸맞게 달빛처럼 빛나는 금발 머리칼에서 흘러내리는 빗물들을 털어내고는 커피포트의 전원을 켠다.
“차랑 핫초코 중에 뭐가 좋아?”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
“무슨 말이야, 친구 사이에.”
“...그럼...따뜻한 차...”
“알았어.”
페퍼민트 티백을 하나 꺼내 머그잔 안에 튕겨 넣고는 케이에게 건네자 “고마워.” 하고 컵에 살짝 입술을 댄다. 몸이 좀 녹는 것 같아? 하고 묻는데 그 말에 대한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평소와는 달리 시무룩해져 있는 케이의 모습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일까 싶어 걱정이 앞선다. 고민을 하다 케이크 진열장에 있는 딸기 쇼트케이크 하나를 꺼내온다.
“케이, 내가 사는거야. 먹어.”
그 말에 차를 마시던 케이의 움직임이 멈춘다. 케이크를 먹으려고 하는건가? 하고 아무렇지 않게 케이를 바라보다 어깨를 들썩이는 모습에 당황한다.
“...케...케이...”
“고마워.”
울먹이면서도 분명히 나온 그 말에 케이의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눈물이 맺혀 있지만 입가는 웃고 있었다.
“오늘 내 생일이거든. 근데 오늘 형이 바쁘다고 안 놀아줘서...심통나서 나 혼자 놀러 나왔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져서 오도가도 못 하고 있던거야. 헤헤, 웃기지.”
뭐가 웃기다고 웃는거야, 바보 같은 케이쨩...
“하지만 우리 형 좋은 사람이야. 형은 맨날 나하고 잘 놀아주고 내가 좋아하는 것도 다 알고 챙겨주거든.”
실없이 웃는 케이의 모습을 보면서 어쩐지 기분이 이상해진다. 케이크를 한 입 먹고 “맛있다.” 하고 말하는 것도, “토비오쨩도 먹을래?” 하고 내 입 앞으로 포크를 내미는 것도. 왜일까. 왜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자신도 모르게 “케이쨩.” 하고 그의 이름을 부른다.
케이의 손을 붙잡고는 “십년 뒤 네 생일 때, 지금 이 자리에서 네게 내가 직접 만든 딸기 케이크를 선물해줄게. 아직은 딸기 장식 밖에 못 하지만 그 때가 되면 다 만들 수 있을 것 같으니깐.” 하고 말한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떠벌리는 말에 케이는 “말만으로도 고마워.” 하고 웃는다.
“말로만 하는거 아냐! 진짜 케이쨩만을 위한 케이크 만들거니깐!”
“알아, 토비오쨩.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시덥지 않게 여긴 것도 아냐. 그냥 고마워서...”
새끼손가락이라도 걸고 약속할까? 하는 자신의 말에 그래, 하고 케이가 손을 내민다. 잠시였지만 연결되었던 손가락이 너무나도 부드럽고 따뜻해서 놓고 싶지 않았다.
# 3
너무나도 오랜만에 케이의 꿈을 꾸었다. 6년 전 아버지가 다른 지역으로 발령나면서 케이와 케이네 가족은 이 동네를 떠났다. 더 이상 케이쨩은 내 옆에 없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10년 전 했던 약속이 잊혀지지가 않았다. 미처 연락처도 묻지 못 했으면서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버지에게 케이크 만드는 특훈도 하고 늘 케이의 생일 때마다 홀로 방에서 축하를 해줬다. 케이쨩, 케이쨩. 올해도 케이쨩이 좋아하는 딸기 쇼트케이크야. 올해는 생크림을 직접 만들어봤어. 하고 속으로 집어 삼키며. 어째서 오늘따라 케이의 생각이 나는 것일까 하고 달력을 본다. 9월 27일, 오늘은 츠키시마 케이의 18번째 생일이다.
만날 리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면서 케이크를 만든다. 올해부터 케이크 시트는 자신이 만들게 되었다. 아버지께서도 자신의 실력을 인정해 준 덕에 몇몇 케이크는 자신이 만들게 되었다. 하지만 딸기를 올린 케이크만큼은 만들지 않았다. 케이쨩만을 위한 케이크를 만들거니깐! 하고 말했던 10년 전의 자신이 무의식 중에 딸기 케이크만큼은 못 만들게 하는 것일까.
“그래도 오늘은... 케이쨩 네 생일이니깐...” 하고 중얼거리며 나도 모르게 케이크를 만들기 시작한다. 케이쨩이 그 약속을 기억할리 없는데, 케이쨩이 이 먼 곳까지 다시 와 줄 리가 없는데, 하면서도 바보처럼 케이크를 만든다. 케이쨩이 좋아하는 딸기 슬라이스를 층층이 쌓아 넣고 부드러운 생크림을 듬뿍 짜낸 폭신한 케이크가 완성되었다. 단순한 외형이지만 먹었을 때 만족감이 들 만한 완성품을 눈 앞에 두고 “내가 이걸 왜 만들었지...?” 하고 허탈하게 웃는다. 이미 시간은 저녁 9시를 훌쩍 넘겨 버렸다. 폐점을 해야 한다는 것도 잊은 채 케이크를 만드는데 열중했단 것을 깨닫고는 가게 안을 정리하러 나가는데 짤랑- 하고 벨이 울린다.
“죄송하지만 오늘 영업 끝났...” 하고 말하다 문 앞에 서있는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못 한다. 자신보다 키도 훨씬 크고 차분한 외양, 하지만 그 안에는 헤어졌던 6년간 그리고 그렸던 어린 시절의 모습이 남아 있었다.
“늦어서 미안해, 토비오쨩.”
그 말에 자신도 모르게 케이를 향해 달려들어 그를 품 안에 안아버린다. 이 품이 얼마나 그리웠던가, 얼마나 이 목소리를 듣고 싶었던가. 하지만 그 어떤 말보다 이 말이 더 급하다.
“...생일 축하해, 케이.”
=
* 좀 더 쓰고 싶었는데 너무 늦게 시작하는 바람에...8ㅅ8
아마 뒷내용을 썼다면 전체공개하기 어려운 내용으로 흘러가지 않았을까요ㅋㅋ!
* 처음 두 사람이 만났던 시점은 8세 때이고 이 땐 카게야마가 더 키가 컸다는 설정입니다.
*원작에선 볼 수 없었던 포카포카한 카게츠키가 쓰고 싶었어요, 케이크라는 주제에 맞게요ㅋ0ㅋ)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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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 이누스가] 무제 ▒ 2
* 느낌이 확 달라진 부분이 있을겁니다... 새로 쓴 부분이라 그래요(mm )
비공으로 돌릴까 고민이 되는 일요일 오전 12시 32분입니다....
=
“지겨워.”
머리를 말리다 말고 튀어나온 불평에 이불을 깔던 다이치가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하고 묻는다.
“아침 연습 때부터 뭔가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었어, 스가.”
“별 거 아니니깐 신경 안 써도 괜찮아, 다이치. 그냥 혼잣말이었어.”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며 드라이기의 전원을 끄는데 “아직 다 안 말랐어.” 하고 내 손에서 드라이기를 빼앗아 들더니 머리를 살살 쓸어 올린다.
“뜨거워.”
“그래도 좀 참아. 안까지 바싹 말려야지 머릿결에 좋대.”
“뭐야 그거, 어디서 배운 거야?”
“미용실에서.”
“너 답지 않게 섬세한 것까지 신경 쓰네.”
말로는 틱틱 거리면서도 부드럽게 머리를 만져주는 손길에 기분이 좀 나아지는 것 같아 아예 다이치를 향해 몸을 틀었다.
“다이치.”
“응?”
“고마워.”
뭐가? 라는 표정으로 잠깐 나를 바라보던 다이치가 “고마운 걸 알면 속 좀 썩이지 말아줘, 내가 보육원 원장도 아니고 케어해줘야 하는 애들이 왜 이렇게 많아?” 하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다음부턴 밖에 나갈 때 나간다고 귀띔이라도 해 줘. 다들 걱정했어.”
자, 다시 뒤로 돌아- 머리 더 말려줄게 하고 내 몸을 돌린 다이치에게 “미안해.” 하고 말한다.
“싱겁기는.”
그 말을 끝으로 위잉-하는 드라이기 소리만이 방 안을 메운다.
“다 됐다. 스가, 거울 한 번 봐봐.”
거울을 들자마자 자신 있게 내 앞으로 거울을 들이민 다이치의 얼굴이 먼저 보인다.
그 다음엔 볼륨감이 있으면서도 부드럽게 내려앉은 내 머리칼이 보였다.
“손재주 좋네. 다이치, 나중에 미용사 해도 되겠어.”
“그래? 나한테 그런 재능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재능이라는 단어에 가슴이 콱 막히는 것 같다.
갖고 싶어 애원하고 아무리 발버둥을 쳐대도 얻을 수 없었던 꿈만 같은 단어가 내 목을 조여 온다.
콜록-
잔기침을 하자 “여름 감기라도 걸렸어? 조심해야지.” 하면서 다이치가 창문을 닫는다.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내 장래 희망을 바꿔 봐도 좋을 것 같아. 미용 학교로 진학해서 성공하면 네 전속 미용사가 되어줄게.”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마, 다이치. 내 말 하나 때문에 네 꿈을 버릴 필요는 없어.”
“그렇다면 넌 어때?”
갑작스런 물음에 의문을 가득 담은 표정으로 다이치를 돌아본다.
“넌 뭐가 되고 싶은데?”
“되고 싶은 것...?”
“그래, 스가. 네가 되고 싶은 건 뭐야? 네 꿈은?”
그 말에 잠깐 생각을 한다.
내 꿈은 무엇일까.
배구를 계속 하는 것?
아니, 그건 아닐 것이다.
내 자신에게는 계속해서 배구를 해나갈 재능이 없으니깐.
재능이 있다면 더 해보고 싶을 수 있겠지만 지금 상태로는 아니다.
“난 내가 뭐가 되든 상관없이 배구는 계속 하고 싶어. 실업팀에 속해서 경기를 해도 좋고, 조기 축구회처럼 취미 배구를 해도 좋고.”
“...다이치답네.”
“거기에 하나 더. 내가 뛰는 팀의 세터는 너였으면 좋겠어, 스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다이치를 난 조금은 슬픈 표정으로 바라봤던 것 같다.
그 꿈은 이룰 수 있을까?
“다이치, 난 네 꿈을 이뤄줄 수 없을 것 같아.”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이치가 “왜?” 하고 묻는다.
“왜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지금도 정세터가 아닌데 나중이라고 뭔가 바뀔 리가 없잖아, 다이치. 내가 계속 배구를 하고 싶더라도 잘 하지 못 한다면, 내가 내 발목을 붙잡는다면, 난 견딜 수 없을 거야. 너도 알잖아, 스포츠는 좋아한다고 해서 끝이 아니란 것을. 좋아하는 것만큼 그걸 받쳐 줄 재능이 필요해. 코트 위에 조금이라도 더 오래 있기 위해서는 이겨야 해. 이기기 위해서는 끝없는 노력과 성실성, 팀워크도 중요하지만 결국엔 재능이야. 그치만 내겐 재능이 없어.”
마지막 말을 할 때는 살짝 울컥했던 것도 같다.
“그런 말이 어딨어? 넌 지금 열심히 노력하는 다른 팀원들, 아니 다른 사람들까지 깎아내리는 말을 하고 있어. 못 하면 어때, 공이 마음대로 조절되지 않으면 또 어때? 내가 좋아서 하겠다, 못 하더라도 그저 공을 잡는 것이 신나니깐, 함께 경기를 뛰고 있다는 것이 좋으니깐, 호흡을 맞추는 것이 의미 있으니깐 배구를 하는 거 아니었어?”
조금은 흥분해 목소리가 커진 다이치의 어깨를 잡으며 “다이치, 목소리가 너무 커. 다른 애들 쉬고 있을 시간이니깐 조용히 좀 말 해.” 하고 달랜다.
“예전의 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어. 지금보다 더 빨리 시합이 끝나버리고 더 이상 경기를 뛸 수 없어도 열심히 연습을 해 왔잖아. 기억나, 스가? 작년까지만 해도 합숙 날마다 대학에 진학하더라도 함께 배구를 하자, 대학을 졸업한 다음엔 우리끼리 카라스노OB 팀을 만들자 하면서 아사히랑 약속도 했었잖아. 근데 왜 그래?”
“지금은 달라, 이젠 현실을 직시할 때야. 오늘 경기도 떠올려봐.”
“네 마음이 바뀐 이유, 혹시 카게야마 때문이야?”
직접적으로 물어오는 다이치에게 응, 아니의 대답도 하지 못 했다.
“맞나보네.”
대답을 듣지 않아도 내 마음을 꿰뚫어보는 다이치에게 더 이상 숨길 것은 없었다.
“카게야마에게 너무 그러지 마. 카게야마는 그저 열심히 시합을 뛰었을 뿐이야. 그러고보니 너, 아까 교체되어 투입될 때 기분이 살짝 안 좋아보였는데.”
흔들림 없는 다이치의 눈빛이 가슴을 아리게 만든다.
그래, 카게야마는 단지 좋아하는 배구를 열심히 했을 뿐이다.
그 재능을 펼쳐 보였을 뿐이다.
“겉으로는 비등하게 시합을 끌어나가고 있는 것 같아 보였겠지만 카게야마도 아직 어린 애야. 자신이 흔들리고 있단 것을 눈치채고 네게 도움을 청한 거야. 거기다 넌 시합을 잘 이끌어줬어. 그걸 보면서 카게야마도 다시 안정감을 되찾았고.”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감정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카게야마가 나쁜 의도를 가지고 한 행동이 아니란 걸 알아. 어쩌면 내게도 기회를 더 주고 싶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아무 생각 없이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
누구에게도 하고 싶지 않았던 말.
누구에게도 들려주고 싶지 않았던 내 고집.
“근데 난 싫어. 동정 받는 것도 싫지만 시합에 나가지 못 하는 것도 싫어. 코트에 오래 있지 못 하는 것도 싫지만 모두가 코트에 오래 있을 수 없게 만드는 내 능력도 싫어.”
“스가, 그만해.”
그만하라는 다이치의 표정은 어딘지 모르게 일그러져 있었던 것도 같다.
“미안, 또 제멋대로 행동해서.”
“그런 말이 아냐.”
“나까지 이렇게 널 힘들게 해선 안 되는데.”
“그게 아니야, 스가. 난 그저 네가 그런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견디기 어려운 것뿐이야.”
우린 한 팀이잖아, 카게야마가 너보다 더 많이 뛴다고 해서 모두가 널 필요없다 말하거나 네가 정세터로 뛰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널 동정하거나 하지 않는다는 것은 네가 더 잘 알잖아.
우린 그냥 같은 팀으로서 서로를 존중하고 좋아하잖아, 스가. 왜 그걸 몰라줘?
이어지는 다이치의 말에도 한 번 비틀어진 마음은 풀어지지 않는다.
“한 번만 더 제멋대로 해도 괜찮을까, 다이치?”
다이치의 의사를 물었지만 싫다고 해도 내 멋대로 행동할 것이다.
“먼저 자고 있어, 나 좀 나갔다 올게.”
-
자리를 박차고 나와 아까 걸었던 길을 다시금 걷는다.
답답한 기분을 뭔가로 풀어내고 싶다.
한 걸음씩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스가와라상?” 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를 알기에 일부러 발걸음을 빨리하며 멀어지려 하는데 “멈춰주세요.” 하며 다급한 발소리가 겹쳐진다.
“왜 피하려는 거에요?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요?”
“그만 좀 따라다니라고 했잖아!”
이누오카를 향해 몸을 돌린 내게서 짜증이 섞인 목소리가 목울대를 긁으며 터져 나온다.
“제발 날 내버려 둬.”
“힘들어하는 걸 보고 돌아서라구요? 전 그렇게 못 해요.”
뒷걸음질로 한 발자국 멀어지면 두 발자국 더 다가오고, 다가오지 말라고 밀어내는 팔을 붙잡고 날 끌어당긴다.
“스가와라상, 당신이 아무리 절 밀어내고 싫다고 말해도 전 제 마음을 바꿀 생각이 없어요. 당신이 행복하길 바라지만 그만큼 저도 행복해지고 싶으니깐요.”
“...이기적이야, 네 행복을 위해 싫다는 사람 꽁무니를 그렇게 쫓아다녀야겠어?”
고개를 치켜들고 이누오카를 노려본다.
이누오카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은 한없이 차갑고 가시가 돋혀있다.
그런 나와는 다르게 이누오카의 눈은 너무나도 다정하다.
“그쵸, 이기적이죠. 하지만 지금 스가와라상을 혼자 두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래요.”
그 말에 이누오카의 손에 붙잡힌 팔의 힘이 쑥 빠진다.
“잠깐만이라도 괜찮으니깐, 이렇게 안아주고 싶었어요.”
오전에 안겼었던 것과 같은 품인데 지금은 시원한 바다향이 나면서 마음이 조금은 안정되는 것만 같다.
그렇게나 싫다고 밀어댔었는데 어째서일까.
“아무도 없으면 스가와라상 또 다시 머리를 쥐어뜯고 자책하면서 울어버릴지도 모르잖아요.”
순간 숨이 멈춰진다.
어떤 말도 새어나오지 않는다.
“스가와라상.”
이누오카가 날 부른다.
“스가와라상.”
이누오카가 내 이름을 부를 때 마다 음절의 진동이 날 들썩이게 한다.
“괜찮아요, 제가 옆에 있으니깐- 울어도 괜찮아요. 저한테 화풀이 하셔도 괜찮아요. 다만 자신을 괴롭히지는 말아주세요. 괴로워하는 스가와라상을 볼 때마다 제가 더 아파요. 이기적이란 걸 알지만 난 아프고 싶지 않아. 스가와라상의 행복한 모습만 보고 싶은데 이상하게 제가 당신을 볼 때마다 당신은 왜 늘 힘들어하는 걸까요.”
이누오카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귓가를 타고 흘러내려 가슴에 박힌다.
나를 언제부터 그런 눈으로 바라본 것일까.
언제, 어떤 이유로 날 바라보고, 나 같은 사람을 위해 걱정을 하는 것일까.
“...이누오ㅋ...”
그의 이름을 부르던 때, “차라리 당신이 자신의 감정을 인정해버린다면 덜 힘들텐데.” 라 속삭이는 말에 움직이던 입술을 멈춘다.
“카게야마에게 질투하는만큼 배구를 소중히 여기고 그를 좋아한단 사실을요.”
가느다란 실로 겨우 유지하고 있던 감정의 끈이 끊어진다.
“스가와라상이 고백을 한다면 카게야마는 순순히 받아들일거에요. 당신이 좋아한다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 잘 알지도 못 하면서 받아들일 확률이 더 높지만... 그래도 그렇게 된다면 조금이라도 스가와라상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요?”
어째서 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좋아하는 사람이 행복해질 수만 있다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해도 좋다고.
“당신이 날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아, 내가 당신을 좋아한다는 마음만으로도 살 수 있으니깐. 어제도 당신을 좋아했고 오늘도 당신을 좋아하고 내일, 또 그 다음 날도 당신만을 좋아할거에요.”
나와 단 둘이 있을 때마다 늘 이누오카가 하던 말.
오늘도 내일도 또 그 다음 날도 나만 좋아하겠다는 말.
합숙 때마다 들어오던 저 말이 오늘따라 가슴 시리게 아프다.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지금의 넌 어떤 표정으로 말하고 있는 것일까.
네 얼굴이 보고 싶지만 볼 수가 없다.
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저 난 네 품 안에 파고 들어 소리 없이 울음을 집어 삼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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