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Q!! 츳키른] 달의 앞면 ▒ 18
* 매번 언급했던 말이지만 다시 한 번 더... "독특한 시스템으로 진행된 연성입니다."
그래서 시점이나 장면 전환이 갑작스레 일어나는 부분이 많습니다ㅠㅅㅠ)... 이 점은 나중에(...) 수정,보완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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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맛있게 잠을 자고 있는데 전화 소리에 눈이 떠진다.
뭔가 꿈을 꾸고 있었던 것 같지만 갑작스레 잠을 깨서일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핸드폰을 들고 누가 전화했는지를 확인한 뒤 통화 버튼을 누른다.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보고 싶어서."
한 번 연락을 받아주자 집요할 정도로 부딪혀오는 카게야마의 행동에 조금은 당황스러움을 느끼면서도 말을 이어나간다.
"지금 몇 시인데?"
"아홉시야, 이쯤 되면 일어날 때도 되지 않았어?"
"...오후 수업이라 더 자도 괜찮았다고."
칭얼거리면서 몸을 일으켜 벽에 기대앉는다.
"꿈까지 꾸면서 잘 자고 있었는데 네가 깨웠어."
"오이카와상이랑은 어제 잘 놀았어?"
내 말을 듣고 있긴 한 건지 자기 할 말만 해대는 카게야마에게 "네 전화 끝난 다음에 헤어졌어." 하고 말한다.
"원래는 좀 더 돌아다니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다 네 전화 때문에 일들이 꼬이는 것 같아. 역시 안 맞아."
"오히려 그게 더 상성이 잘 맞는다는 거 아니겠어?"
"뭔 헛소리야?"
"나랑 같이 있어야 하니깐 다른 사람과 같이 있는 게 깨지는 거지. 어때, 이 정도면 꽤 논리적이지 않아?"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내세우는 카게야마가 어이없으면서도 어쩐지 귀엽게 느껴진다.
"바보 같은 면이 귀여워 보일 때가 다 있네."
"지금 그거 칭찬이야 욕이야?"
"...칭찬으로 받아들여."
심드렁한 듯 대답하면서도 전화를 붙잡고 씩씩거릴 카게야마를 상상하니 뭔가 기분이 좋아져 웃음이 살짝 나온다.
"그래도 좋다."
뜬금없는 카게야마의 말에 머릿속이 물음표로 가득해진다.
"뭐가 좋다는..."
"네 목소리 듣는 것만으로도 좋아. 오늘 하루도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너 정말..."
이상하다, 는 말과 독특하다, 라는 말이 혀끝을 간지럽힌다.
그치만 배구와 관련되지 않은, 나라는 대상에게 호감을 갖고 말하는 카게야마의 낯선 행동이 싫지만은 않다.
"하루 빨리 네 얼굴이 보고 싶어.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에서 네 목소리를 듣고 싶어. 네 비웃는 듯 한 표정마저도 그리워."
마치 몇 년 동안 떨어져 있던 연인에게 말하듯 토해내는 카게야마의 말들에 잠깐 혼란스러워진다.
그러다 정신을 다잡고는 "우리 얼굴 본 지 일주일도 안 된 거 알아?" 하고 흘러나오는 말들을 막아본다.
"그래도 보고 싶어. 이렇게까지 좋아하는 줄 몰랐는데."
네코마 주장이랑 오이카와상 일을 보고 들으니깐- 하는 말이 이어진다.
"배구 이외에도 부러울 일이 생길거란 건 정말 몰랐었다고.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조금은 날카로우면서도 응석을 부리는듯한 카게야마의 목소리에 오히려 내가 더 당황스러움을 느낀다.
나도 네가 이렇게 말 할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고...!
"야, 너 지금 나한테 책임 전가하는 거야? 네 멋대로 좋아 해놓고 나서?"
"먼저 네가 나한테 시비만 안 걸었어도! 이렇게 되진 않았을 거라고. 분해."
분하다는 말의 의미를 알고 쓰는 걸까 의심이 되면서도 "그래도 좋아한다고, 네 비아냥거리는 말에 화가 날 정도로 속이 뒤집히면서도 더 그 말을 듣고 싶어 견딜 수 없단 말야." 하는 말에 결국 박장대소하게 된다.
카게야마와 직접적으로 알게 된 지 햇수로 4년 차.
처음으로 카게야마와의 대화에서 순수한 의미로 크게 웃은 것만 같다.
가볍게 몇 마디를 더 주고받은 뒤 "내일 아침에도 전화하면 받아줄 수 있어?" 하는 카게야마의 말에 "답지 않게 부탁조로 말하는 거 안 어울려, 카게야마." 하고 내치면서도 "9시부터 수업이 있어서 지금처럼은 못 받을 거야." 하고 순순히 일정을 말한다.
"그럼 저녁때라도 전화하면..."
"전화하고 싶을 때 해. 뭘 약속까지 잡아가면서 전화하려고 해?"
"네가 날 거절하는 걸지도 모르잖아."
어쩜 저렇게 극단적으로 생각이 흘러갈 수 있을까, 저러고도 제왕님 맞아? 하며 속으로 한숨을 내쉰다.
"다른 일을 하다 연락이 늦어질 수도 있지만 아예 연락을 대놓고 무시하진 않아."
"그럼 또 연락할게."
"맘대로 해."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츠키시마." 하고 카게야마가 자신을 부른다.
"...깨워서 미안, 오늘 수업 잘 들어." 하고 자기 할 말만 한 뒤 카게야마가 전화를 끊어버린다.
여전히 저 제멋대로인 언동이지만 날 향한 감정이 섞여있단 것을 알기에 이전처럼 화가 나진 않는다.
"...그럼 일어나볼까-"
오히려 산뜻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를 정리하게 되는 것이었다.
-
침대 정리를 마친 뒤 방 한 켠을 보다가 세탁하고 하루 동안 말려놓았던 쿠로오씨의 옷가지들이 눈에 들어온다. 옷가지들을 개면서 ‘빨리 갖다 드려야하는데...’ 하고 생각을 한다.
쿠로오씨의 일정이 어떨지 모르니깐 멋대로 들고 나가기도 뭐하고 해서 [쿠로오씨, 오늘 시간 되세요?] 라는 문자를 보내놓은 뒤 방 안을 둘러본다.
며칠 동안 밖으로 돌아다녀서 그런가 크게 어지럽혀지지 않은 방 안에서 이질적인 물건 하나가 계속 눈에 들어온다.
지난 주말, 우카이상에게서 빼앗아왔던 담뱃갑이었다.
어색하게 헤어졌던 것이 마음에 계속 걸려서였을까, 버스 안에서 잠시 잠 들었을 때에도 우카이상의 꿈을 꾸고 지금마저도 우카이상의 물건에 신경이 쓰인다.
우카이상에게 어떤 말이든 하고 싶었다.
하지만 들었던 핸드폰을 다시 내려놓는다.
무슨 말을 하건 어색한 기운이 가라앉지 않을 것만 같아 조금은 시간을 둬야 할 것만 같다.
"쿠로오씨 연락마저도 안 오네."
생각지도 않았던 카게야마와의 통화 덕분에 들떴던 기분이 가라앉아간다.
억지로라도 힘을 내기 위해 헤드폰을 쓰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곡목을 훑어 내리다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에서 손이 멈춘다.
긴장이 되거나 마음이 복잡할 때 마다 클래식을 듣는 습관은 여전하다.
눈을 감은 채 곡에 빠져 들어간다.
복잡한 마음이 풀렸다가 다시 엉켜졌다 풀리는 것이 반복되며 기분이 나아지는 것만 같다.
곡을 다 듣고 난 뒤 핸드폰을 바라보자 쿠로오씨의 문자 한 통이 와 있는 것을 발견한다.
[왜 물어보는건데?]
다소 퉁명스러운 말투지만 별다른 생각이 없이 [월요일에 빌렸던 옷 돌려드리려구요. 세탁까지 해놨는데 깜박했었어요.] 라 답문을 보낸다.
[오늘은 수업 없어서 한가해. 넌?]
[저도 오늘은 한가한 편이에요. 오후 수업 하나만 있거든요.]
[그래?]
주말 내내 보고 싶었다면서 단 팥앙금을 준비해놓고, 내게 응석도 부리던 모습과는 달리 오늘따라 미적지근한 쿠로오씨의 문자에 오히려 애가 탄다.
먼저 부딪혀오던 쿠로오씨답지 않은 행동에 조바심이 난다.
찬 물을 들이키면서 어느새 말라버린 입술을 축이고는 [만날래요?] 라는 네 글자를 보낸다.
=
[쿠로오 시점]
"켄마, 내려와!"
전골냄비를 내려놓으면서 쿠로오는 위층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어제 저녁 [전골 먹고 싶어] 라는 문자를 보낸 켄마 때문에 새벽부터 장을 봐 전골 요리를 할 준비는 끝마쳤는데 정작 먹고 싶다고 말한 켄마가 내려오지를 않는다.
"켄마!"
다시 한 번 켄마의 이름을 불러보지만 대답이 없다.
아무래도 며칠 전 새로 나왔다는 게임을 하느라 정신이 없는 모양이다.
"녀석 참-"
한숨을 내쉬며 계단을 올라간다.
방문을 두드리며 "켄마." 하고 부르지만 무표정한 얼굴로 핸드폰 자판을 마구 누르는 켄마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눈을 반짝이며 화면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켄마, 준비 다 끝났-"
머리를 긁적이며 켄마에게 다가가던 쿠로오는 켄마의 손에 잡혀있는 핸드폰이 자신의 것이라는 걸 그제야 인식한다.
자신의 핸드폰에 켄마가 관심을 가질만한 게임이 있었던가? 고개를 갸웃하며 화면을 본 쿠로오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켄마!"
빠르게 손을 뻗어 핸드폰을 빼앗아든다.
츠키시마와의 대화 내용을 보고 당황해하는 자신을 본 켄마가 "아, 쿠로..." 하고 살짝 난감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다.
"왜 이랬는지는 이따 꼭 물어 볼거야, 켄마."
그렇게 말하고 돌아선 쿠로오는 츠키시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
[다시 본편 진행]
방금 전까지 대충 문자를 보내던 쿠로오씨가 갑자기 전화를 걸었다는 사실이 조금 놀랍긴 했지만 일단 통화 버튼을 눌러본다.
"네, 츠키시ㅁ..."
"미안, 지금 문자들 모두 미안!"
쿠로오씨의 다급한 목소리에 "네? 뭐가요?" 하고 반문한다.
"지금 문자들 말이야, 내가 전골 준비하는 동안 켄마 녀석이 답장한 거였다고."
그 말에 지금까지의 상황들이 한 번에 이해가 되었다.
지난번 쿠로오씨와 처음 이 동네에서 만났을 때 코즈메상도 함께 있었다.
그 때 코즈메상은 내게 몇 번 경계심을 보였었다.
혹시라도 소꿉친구를 빼앗아 갈까봐 걱정되고 두려운 마음에 이런 행동을 한 것일까.
"그치만 오늘 수업 없어서 하루 종일 시간 있는 건 맞아. 만날 수 있어, 아니, 만나자. 지금 우리 집으로 올래?"
"...괜찮은 거에요?"
"뭐가."
"코즈메상이 저한테 질투하고 있는 것 같은데 괜히 제가 갔다가 쿠로오씨랑 코즈메상 사이만 어색해지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요."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 켄마한테 말 잘 해놓을 테니깐."
아니, 그게 아니라- 하고 말을 하려는데 "그럼 기다릴게!" 하고 쿠로오씨가 전화를 뚝 끊어버린다.
다시 전화를 걸어 안 가겠다 말 할 수도 없고, 종이봉투 하나를 꺼내 쿠로오씨의 옷가지를 담고는 일단 일어난다.
쿠로오씨의 집으로 향하면서 근처 빵집에 들러 코즈메상이 좋아하는 애플파이 여러 개를 집는다.
처음엔 어색할 수도 있겠지만 후식을 먹으면서 얘기를 하다보면 분위기가 유해지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어느 정도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쿠로오씨를 위한 선물 같은 것도 사 가야 하지 않을까, 하고 고민을 하게 된다.
옷을 빌려줬는데 그냥 세탁만 해서 갔다주기는 뭐하고... 그치만 아직 문을 연 상점들이 많지 않은데다 쿠로오씨에게 줄만한 것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이대로 쿠로오씨 집을 갈까하고 발걸음을 옮기던 때 눈에 들어온 것은 편의점 앞에 쌓아둔 섬유유연제였다.
향도 괜찮고 값도 저렴한 편이라 잘 쓰고 있는 제품을 보자 저걸 사다줄까? 하는 생각이 들어 하나를 집어 들고 계산대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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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는다 싶더라니 뭘 그렇게 사왔어."
혼내는 듯 하면서도 다정한 목소리에 문 쪽으로 눈을 돌리자, 그 앞에 서있는 쿠로오씨가 보인다.
"...쿠로오씨?"
"혹시라도 기분 상해서 안 오는 줄 알았잖아, 자 봉투 나한테 줘." 하며 손을 내미는 쿠로오씨에게 나도 모르게 봉투들을 넘긴다.
"코즈메상은..."
"얘기 다 했어. 나랑 네가 너무 친해질까봐 그게 좀 걱정 된 건가봐. 아무리 그래도 켄마가 소꿉친구인 사실은 변하지 않는데 말야."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쿠로오씨의 미소에 '그건 아니에요.' 하고 말하고 싶어진다.
소꿉친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그 동안 쌓아왔던 우정에 틈이 생기는 것처럼 느껴지는 게 싫은 거라구요.
마치 내가 야마구치의 연락이 뜸해지면 불안해지는 것처럼 코즈메상도 제가 쿠로오씨랑 친해졌을 때 쿠로오씨가 코즈메상이 아닌 절 선택하는 일이 벌어지는 게 두려워서 그런거라구요.
하지만 그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말하지 않는다.
어쩌면 나 역시 코즈메상과 같을지도 모른다.
쿠로오씨의 다정함이 내게 좀 더 비춰지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이 조금은 있는 걸지도 모른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코즈메상이 보인다.
원래도 대화하기 어려운 상대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지금은 특히나 말을 하기 어렵다.
하지만 먼저 "안녕하세요, 코즈메상." 하고 목소리를 낸다.
혹시나 인사를 거절당하지는 않을까 걱정한 것과는 달리 코즈메상이 "안녕-" 하고 작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맞인사를 건넨다.
"츳키가 너 먹으라고 애플파이 사들고 왔어, 여기."
쿠로오씨가 코즈메상에게 내가 사들고 온 빵 봉투를 건넨다.
이에 잠깐 코즈메상의 눈이 날 똑바로 응시하다 바로 시선을 떨궈 "고마워." 하고 봉투를 건네받는다.
"자 그럼 빨리 식사를 하자고!"
쿠로오씨가 웃으면서 나와 코즈메상을 데리고 거실로 향한다.
"오늘은 특별히 전골을 준비했으니깐 맛있게 먹자고Wㅅㅇ)!"
자신만만해하는 쿠로오씨의 모습이 믿음직스러우면서도 정말 맛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만든다.
전골냄비 안의 모양은 그럭저럭 이긴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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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골을 다 먹고 난 뒤 치우려고 하는데 "괜찮아." 하고 쿠로오씨가 손목을 잡아 끈다.
"아까 멋대로 문자 보낸 벌로 켄마가 치우기로 했으니깐."
그치만- 하고 싱크대로 눈을 돌리는 내게 "오히려 먼저 방 안에 올라가 있는 것이 켄마를 도와 주는 거야." 하면서 "애플파이 가지고 먼저 올라갈게." 하고 쿠로오씨가 빵 봉투를 집어든다.
며칠 만에 들어간 쿠로오씨의 방은 이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방 안에 탁자를 꺼내 펴다가 문득 지난 금요일의 일이 떠올랐다.
그저께는 아무렇지 않게 들어왔던 쿠로오씨의 집인데 오늘따라 얼굴이 화끈거리며 떨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뜨거웠던 입술, 날카로웠던 목의 상처, 밀려올라갔던 윗도리가 머릿속을 뱅글뱅글 돌기 시작한다.
"전골은 괜찮았어?"
쿠로오씨의 물음에 사고가 뚝 하고 끊긴다.
"켄마가 먹고 싶대서 만들어봤는데 아무래도 소스 배합을 잘못 한 것 같아서. 원래는 잘 만들 수 있는데- 문자를 멋대로 보냈단 걸 알고 나서 조미료를 넣었는지 안 넣었는지 기억이 안 나서 막 넣었더니..."
머리를 긁적이는 쿠로오씨가 귀엽게만 보인다.
"너랑 켄마 둘 다 맛있다고 하면서 먹긴 했지만 내가 먹어도 별로였는걸. 너 괜히 오라고 했나봐."
평소 대담하다 못 해 능글맞게 느껴질 때도 있는 쿠로오씨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게 의외다.
"아녜요, 괜찮았어요."
시무룩한 쿠로오씨를 보는 것은 익숙지 않아 괜찮았다 말하며 쿠로오씨를 다독인다.
"거기다 쿠로오씨가 직접 요리한 거잖아요, 그 정성만으로도 충분해요."
그 말에도 쿠로오씨의 기분은 나아지지 않은 것 같다. 다만 "다음엔 더 맛있는 음식을 해줄게."라 말하며 내 옆으로 조금 더 다가온다.
"어떤거 해주실거에요?"
"네가 먹고 싶은거라면 뭐든지. 미리 얘기해주면 밤을 새워서라도 연습해놓을게."
"어려운 디저트 시켜도 다 만들어줄거에요?"
장난삼아 한 말에도 "츳키가 원한다면 이 탁자만한 딸기케이크도 만들 수 있어." 하는 대답이 곧바로 나온다.
무슨 그런- 하고 웃어넘기려다 쿠로오씨의 표정이 제법 진지해 "기대할게요."라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웃고 있다기엔 조금은 어색하고, 난처한 듯한 표정이 뒤얽힌 쿠로오씨가 날 바라보다 방문을 닫고 탁자 앞으로 돌아온다.
설거지도 다 끝났을텐데 문을 닫는 쿠로오씨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아 서있는 그를 올려다보며 말한다.
"코즈메상 들어와야 하는ㄷ..."
하지만 말을 끝까지 이을 수 없었다.
"잠깐만 이러고 있을게-" 하면서 쿠로오씨가 얼굴을 가까이한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 두 눈을 살짝 감는다.
긴장감에 속눈썹이 떨려온다.
혹시나 코즈메상이 이 모습을 보면 어쩌지, 가뜩이나 어색했던 사이가 더 악화되는 게 아닐까?
그러면서도 내게 내려앉는 쿠로오씨의 따뜻한 입맞춤이 기분 좋아 그의 목을 끌어안는다.
입술을 맞대고 있는 것만으로도 두 뺨이 뜨거워지는 것 같은데 놓고 싶지는 않아 쿠로오씨의 목을 더 끌어내린다.
하지만 쿠로오씨가 "잠깐, 츳키-" 하고 가로막아 조금은 아쉬운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본다.
"그런 표정 짓지 마."
"그런 표정이라뇨?"
"더 하고 싶은데- 하는 아쉬움이 묻어난 표정 말야. 가뜩이나 못 참겠는데 날 자극하지 말아줘."
아까 시무룩해 있던 모습과는 달리 여유가 넘쳐흐르는 쿠로오씨의 말에 두근거리면서도 발끈하게 된다.
"못 참는다면서 왜 멈춘건데요?"
"네가 하두 끌어당겨서 목이 아파. 그러니깐-" 하면서 쿠로오씨가 내 옆에 앉아 날 끌어안는다.
"좀 더 편하게, 좀 더 가까이서 네 입술을 맛보고 싶어."
그 말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생각되어 "그러네요, 제가 너무 제 생각만 했어요." 하고 고개를 끄덕이자 "그래, 너무 네 생각만 했어." 하고 쿠로오씨가 내 앞머리를 쓸어 올린다.
"쓸어 올릴 머리도 없는데-"
"그래도. 입 맞추고 싶으니깐."
일부러 쪽- 하는 소리를 내며 쿠로오씨가 내 이마에 입을 맞춘다.
조금씩 쿠로오씨의 입술이 눈썹, 눈두덩, 코끝을 타고 내려오다 내 입술 위에 머무른다.
"이번엔 빨리 안 놔 줄거야. 네가 원하는 것보다 더 오래."
대답도 듣기 전에 쿠로오씨가 살짝 내 아랫입술을 깨문다.
아프다기 보다는 짜릿한 그 감각에 비음을 흘리며 입술을 열자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생각하면서 나는 감은 눈을 살짝 떠 쿠로오씨를 바라보았다.
마음이 통한 것일까, 쿠로오씨가 감고 있던 눈을 조금씩 뜨기 시작했다.
서로의 눈에 맺힌 모습을 보며 혀끝이 맞부딪힐 때 그 달콤함에 취해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였다.
그걸 눈치 챈 것인지 쿠로오씨가 탁자를 밀어낸다.
그만큼 넓어진 바닥에 나를 조심스레 눕힌 뒤 쿠로오씨가 귓가에 속삭인다.
"조금 더 입 맞출래. 괜찮지?"
지금쯤이면 코즈메상이 정말 올라올지도 모르는데- 하는 불안감이 올라오면서도 내 입술은 제멋대로 "네." 하고 긍정의 말을 내뱉는다.
그럴 줄 알았어- 하고 피식 웃는 소리와 함께 귓바퀴부터 안쪽으로 따뜻한 숨을 불어넣는 쿠로오씨의 행동에 간지러움을 참지 못 하고 "흐윽-"하는 소리를 내자 "츳키, 야한 소리-" 하고 쿠로오씨가 웃는다.
'그 목소리와 표정이 더하거든요?' 하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그 말 대신 "쿠로오씨-" 하며 그의 몸을 꽉 껴안는다.
쿠로오씨의 무게가 온 몸을 짓누른다.
하지만 답답하기 보다는 뭔가 온몸의 신경이 다 곤두서 쿠로오씨의 작은 몸짓 하나에도 떨림이 멈추질 않아 당혹감이 더 크게 다가온다.
"긴장한 거야?"
낮게 울려 퍼지는 쿠로오씨의 목소리에 간신히 고개만 끄덕이자 "귀여워-" 하며 쿠로오씨가 목줄기를 쓰다듬는다.
"희고 얇아서 조금만 힘을 줘도 자국이 남을 것 같아."
그 말과 동시에 지난번에 키스마크를 남긴 부분을 세게 빨아올린다.
"쿠...로오씨..."
저번에는 그저 놀라서 아프고 무섭단 생각만 들었는데 지금은 온 몸이 쭈뼛 서면서도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자국이 남아서 누가 알아보면 어쩌지? 하는 생각도 저리 치워뒀다.
"쿠로오씨..."
그저 쿠로오씨의 숨결이 닿는 곳으로만 감각이 집중되어 녹아버릴 것만 같다.
"왜 불러, 츳키?"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날 부르는 쿠로오씨에게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그저 "쿠로오씨..." 하고 안달이 난 목소리를 들려줄 뿐이었다.
그 목소리에 응답하듯 쿠로오씨의 손이 내 윗도리를 밀어 올린다.
입맞춤에 달아올랐던 탓일까, 급작스런 온도 변화에 차가움을 느낀다.
몸을 떨자 쿠로오씨가 내 상체를 일으켜 등을 쓰다듬어준다.
"괜찮아."
그 말에 거짓말처럼 떨림이 잦아든다.
진정되는 모습을 본 쿠로오씨의 손끝이 척추를 타고 내려오고 그와 동시에 다시금 입을 맞춘다.
얽어지는 숨결만큼이나 달아올라 쿠로오씨의 이름을 부르며 품에 안긴다.
그런 내 몸을 살짝 떼어낸 쿠로오씨가 왼쪽 쇄골을 따라 입을 맞춘다.
두 세번 입을 맞추며 이동하다 이를 세워 잘근잘근 씹는 그 행위에 또 다시 비음이 터져나온다.
"벌써 이러면 어쩌려고 그래-"
"...놀리지 마세요-"
자극에 정신을 차리지 못 하면서도 말은 딱 받아치는 내게 "그래 안 놀릴게." 하며 쿠로오씨가 이마를 맞댄다.
맞댄 이마가 타오르는 것만 같다.
"뜨거워요." 하고 칭얼대자 "나도." 하고 쿠로오씨가 싱긋 웃으며 내 오른손을 잡아 끈다.
"하지만 내 심장이 더 문제야. 느껴져?"
"쿵쾅거리네요."
"이게 다 너 때문이라고, 츳키."
다시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쿠로오씨가 입을 맞춰온다.
혀끝을 세워 치열을 훑다가 가볍게 쓸어 올리는 듯 하더니 갑작스레 숨이 막힐 정도로 깊이 파고 든다.
입을 맞추는 것과 동시에 쿠로오씨의 손이 내 뺨에서 시작해 턱선, 목줄기, 어깨선을 따라 흘러내린다.
그저 가볍게 스쳐지나가는 손길일 뿐인데 어째선지 몸이 달아오른다는 표현이 딱 맞아 들어가고 있었다.
거기다 허벅지 쪽에 무언가 닿고 있는 게 느껴진다.
연애를 해 본 적도, 딱히 누군가를 연애 상대로 좋아해 본 적이 없던 나라도 지금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안다.
심지어 쿠로오씨가 주는 자극 덕택일까, 나 역시 흥분해 다리 사이의 것이 점차 형태를 바꿔가는 것이 느껴진다.
본능적인 것이니 이상할 것도 없지만 이 상황이 부끄러워 입술을 비비면서도 제발 쿠로오씨가 눈치 채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츳키,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하고 속삭이는 목소리에 어딘가로 숨어버리고 싶어졌다.
"...모른 척 해줄 수는 없는 거에요?"
"이 상황에서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귓불을 깨물면서 웃던 쿠로오씨가 잠깐 조용해졌다가 "만져줄까?" 하고 묻는다.
살짝 스쳐지나가는 쿠로오씨의 손가락 때문에 더 견디기 힘들어져 나도 모르게 그만두라고 화를 낼 뻔 했지만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을 코즈메상이 떠올라 "하지마세요, 쿠로오씨. 아래층에 코즈메상이..." 하고 속삭인다.
"걱정할 필요 없어."하며 쿠로오씨가 점차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내 것에 다시 한 번 손을 대려 해 그 손을 붙잡는다.
너무나도 태연한 쿠로오씨의 말투와 행동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뇨, 이러다 정말 코즈메상이랑 사이 나빠지겠어요." 하고 다급하게 외치는데 "켄마라면 아까부터 저기 있었어." 하고 쿠로오씨가 눈웃음을 친다.
"장난하지 마세요!"
"장난 같아? 저기 방문 봐봐."
쿠로오씨의 말을 따라 눈길을 돌렸을 때 평소처럼 무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코즈메상이 눈에 들어왔다.
짜증을 낸다거나 화를 낸다거나 그 어떤 변화도 없었지만 지금까지 코즈메상의 행동과 말들이 머리를 빠르게 스쳐지나간다.
나도 모르게 "저기, 코즈메상, 이건 그러니깐... 아무 것도 아니에요, 그냥 어쩌다보니깐, 어 그게 그러니깐....그렇지, 쿠로오씨가 갑자기 저한테 넘어져서..." 하고 변명을 늘어놓으며 내 위에 올라타 있던 쿠로오씨를 밀쳐낸다.
"야, 그렇다고 그런 식으로 말하기야?" 하고 핀잔을 주는 쿠로오씨를 가볍게 무시하는데 코즈메상에게서 "안 숨겨도 괜찮아." 하는 답이 튀어나온다.
무슨 뜻인지 몰라 코즈메상을 멍하니 바라보는데 "쿠로가 널 좋아하니깐." 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앞에서 이러는 건 별로니깐." 하고 코즈메상의 눈빛이 번뜩인다.
내 말 뜻을 알았으면 여기서 나가지 그래? 하고 말하는 것 같아 방금 전까지 열기에 차올랐던 몸이 차갑게 식어가는 것만 같다.
죄진 사람마냥 밀려올라간 옷을 끌어내리며 빠르게 방 밖으로 나간다.
츠키시마! 하고 부르는 쿠로오씨의 목소리도, 방문을 빠져나가는 날 바라보는 코즈메상의 차가운 시선도 다 무시한 채.
쿠로오씨의 집에 올 때만 해도 빌려 입었던 옷 고마웠다고 감사 인사를 하려 했을 뿐이었는데 왜 일이 이렇게 꼬여버린 것일까.
더 이상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 뒤쫓아 나오는 쿠로오씨를 인지했음에도 길 건너로 무작정 달려버렸다.
=
카게야마 호감도 +3 (상상 → 기분 좋아짐), +3 (박장대소)
카게야마 현재 호감도 = 15+3+3 = 21
쿠로오 호감도 +2 (머리 긁적이는 쿠로오씨 귀여워), +3 (입맞춤), +3 (키스마크+집중되는 감각), –2 (당황)
쿠로오 현재 호감도 = 64+2+3+3-2 = 70
=
* 츠키시마가 쿠로오의 연락을 기다리며 듣고 있는 슈베르트의 곡은 Fantasie in C major, Op. 15 (D. 760) 로 방랑자환상곡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곡이다.
* 쿠로오가 미적지근한 문자를 보내는 이유는 쿠로오네 집에 놀러온 켄마가 답을 하고 있는거라
켄마가 쿠로오인 척 문자를 보내고 있는 이유는 쿠로는 내 소꿉친구인데ㅍㅅㅍ 라는 마음 때문에
* 쿠로오의 요리 솜씨는 이 세상 요리가 아니다ㅁㅅㅁ 아마 저 세상에 가야 이 음식이 먹을만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만 같다ㅁㅅ;;ㅁ 일 정도의 망금이다.
* 켄마는 전골 사달라고 한건데 쿠로 바보ㅍㅅㅍ 라 생각하면서도 표정 변화 없이 먹는다.
* 츠키시마와 쿠로오가 입 맞추는 등의 행동을 하고 있을 때 켄마는 아직도 설거지 중ㅍㅅㅍ 인데 이렇게 시간이 걸리는이유는 그릇 하나 씻고 5분 쉬었다가를 반복 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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