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Q!! 오이츠키] 전력 60분 주제 : 포기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하루였다. 조금 시큰거리는 오른 손목을 주물거리며 탈의실 문을 열고 나왔을 때 익숙한 뒤통수를 발견해 “이와쨩, 나 아이스 사 줘!” 하며 다가갔다가 “오늘은 니가 좀 사!” 하고 성질 내는 이와쨩과 함께 편의점에 들렀던 것도, 뭘 먹을까 하고 고민하다 시원한 소다 맛 아이스크림을 꺼내든 것도, 콧노래를 부르며 아이스크림을 한 입 밀어 넣은 것도 자주 있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다른 날과 달랐던 것은 꽤 심각한 표정으로 맞은 편에서 다가오는 한 남자의 등장이었다. 그저 지나가는 사람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내 왼손이 뭔가에 낚여 채진다. 당황한 나머지 입에 물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떨어뜨릴 뻔 했지만 다행히도 쭈쭈바 형태인데다 오른손으로 야무지게 쥐고 있어서 떨어뜨리진 않았다. 그러나 ‘큰일 날 뻔 했네.’ 하고 가슴을 쓸어 내리는 것도 잠시.
“오이카와 토오루씨?”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네?” 하고 내 손을 낚아챈 장본인을 바라보았다. 나와 눈높이가 맞았지만 어깨와 허리를 살짝 구부정하게 굽히고 있는 것을 봐선 그의 키는 자신보다 좀 더 큰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나 큰 사람이면 기억이 날 것도 같은데… 자신의 손목을 붙잡고 이름을 부른 상대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없다. 대체 이 사람은 누구일까? 의문을 품으며 그의 눈을 바라볼 때였다.
“좋아합니다, 저랑 사귀어 주세요.”
갑작스런 그의 말에 옆에 함께 멈춰서 있던 이와쨩이 아이스크림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렇지만 이와쨩보다 더 놀란 사람은 나였다. 지금까지 내게 좋아한다 말을 했던 사람이 한 둘도 아니었고, 당연히 이런 갑작스런 고백 역시 여러 번 받아봤다. 다만 지금 같이 남자에게 고백을 받은 것은 맹세컨대 처음이다. 혹시라도 내가 잘못 들은 것인가 싶어 “…저…저기요, 무슨 말씀이신지…” 라 말해보지만 그의 표정은 단호하다.
“다시 한 번 말씀드려요?”
“아…아니, 그…그러니깐 저기, 그러니깐…”
살면서 이렇게 당혹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지금껏 어떤 상황에서도 나불나불대던 입술이 떨어지지 않는다. 뭐라 말을 해야 서로의 기분이 상하지 않은 채 헤어질 수 있을까. 아니 이미 기분이 상하지 않는단 선택지는 없는 것일까? 고민을 하고 있는 와중에 옆에서 이와쨩이 “그럼 천천히 얘기하고 와, 난 먼저 갈게.” 하고 어색하게 대사를 치는 것이다. 야, 넌 이 와중에 친구를 두고 도망치냐? 하며 쏘아보지만 내 마음 속 외침은 무시한 채 이와쨩이 서둘러 앞으로 나아간다. 오늘 내가 아이스크림까지 사 줬는데! 물론 네가 떨어뜨리긴 했지만 먹긴 먹었잖아! 그 값은 해 줘야지!!!!! 하며 속을 부글부글 끓이고 있을 때였다.
“대답은 안 해주시나요?”
그 말에 이와쨩을 향했던 눈을 돌려 손 깍지를 끼고서는 손가락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남자를 바라본다. 짧은 머리에 안경을 쓴,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매우 고지식해 보이는 얼굴.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내게 계속 답을 물을 것만 같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결국 꾹 다물려 있던 입술을 떼어내 “저기, 음, 그래, 미안해요, 고백…은 고맙지만 거절할게요.” 라 말한다.
자신의 대답에 그가 입술을 오물거린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것일까? 어지간하면 그냥 돌아서겠지만 날 바라보고 있는 그의 눈빛이 어딘지 모르게 신경이 쓰여 두고 갈 수가 없다. 잠깐만… 기다려볼까? 하고 부동 자세로 멈춰있지만 아무래도 긴장을 한 탓인지 입술이 바짝 타오른다. 고백을 한 입장이 아니라 고백을 받은 입장인데 왜 내가 더 긴장을 해야 하는지, 대체 왜 이렇게 멍하니 서 있어야 하는지 조금 답답한 감정을 느끼며 쭈쭈바를 입가에 갖다 대었다. 끈적하지만 여전히 시원한 아이스크림 덕택에 메말랐던 입술이 부드럽게 풀리는 것만 같다. 한 번 달콤함이 밀려 들어오자 멍해졌던 기분이 나아진다. 하지만 내 앞에 서 있는 그는 간헐적으로 미간을 찌푸리다 피는 것 이외에는 표정의 변화가 없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하며 다시금 아이스크림을 빨아 올릴 때 였다.
“그러면 당신을 포기해야만 하는 이유를 말해주세요.”
“…네?”
“포기를 하더라도 왜 포기해야 하는지 납득이 안 가는 상태로 돌아갈 수는 없어요.”
“일단 그 쪽도 남자고 저도 남자인 건 아시죠?”
“네. 알고 있어요, 근데 그게 왜요?”
정말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이 눈을 깜박이는 그를 보며 하- 하고 한숨이 새어 나온다. 처음 본 사람, 그것도 같은 성별의 사람에게 고백을 받아 안 된다 거절했는데 그게 왜요? 라는 말을 듣는다 라니 이건 뭔 듣도 보도 못 한 신세계인지...
“누군가를 좋아하는데 성별이 그렇게나 중요한가요?”
“…안 중요한 것은 아니죠. 일반적으로 다들 남녀가 만나 연애를 하지 동성 간 연애를 하진 않잖아요.”
“일반적이라는 것은 누군가가 세운 기준일 뿐이지 절대적인 것은 아니죠.”
“그렇지만 전 보편적인 것을 따르며 살고 싶어요. 그 쪽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고.”
“이름은 츠키시마 케이, 오이카와씨보다 2살 어려요. 고교 시절까지는 배구를 했었지만 지금은 하지 않고 있어요. 포지션은 미들 블로커였고요. 또 뭘 말하면 될까요?”
짤막한 자기 소개를 끝내고 어깨를 으쓱이는 그를 보며 다시금 할 말을 잃는다. 어떤 말을 해도 물러서지 않을 것만 같은 그에게 “포기해야 할 이유를 만들어주면 되는 건가요?” 하고 다급하게 외친다.
“…납득이 갈만한 그런 이유들이라면요.”
선뜻 답하는 그의 말에 조금은 놀란다. 방금 전까지의 반응을 봤을 땐 그래도 싫다 말할 줄 알았는데.
“그러면… 그 쪽, 아 츠키시마씨? 라고 했죠? 츠키시마씨가 좋아하는 것들을 우선 알려주세요.”
“…그건 왜요?”
“그 쪽이랑 제 취향이 정반대면 함께 있어봤자 즐겁지 않을테니깐요. 그게 당신이 날 포기할 수 있는 쉬운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요?”
그 말에 그가 턱을 쓸어 내리며 날 바라본다. 뚫어지게 날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 뻔도 했지만 안 그런 척 고개를 빳빳이 들어 올린다.
“취향이 다르다는 것을 알려면 일단 몇 번 만나야 할 것 같네요. 어때요, 오이카와씨. 지금 저랑 함께 식사부터 할까요?”
너무나도 자연스레 내 팔을 잡아 끄는 그의 행동에 지금 뭐가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 채 발걸음을 떼다…어라…? 이게 아닌데? 하고 현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내 팔을 붙잡은 그의 악력이 생각보다 세서 벗어날 수가 없다. 꼼짝없이 끌려가 함께 저녁을 먹어야 할 판국이다.
“…그렇게 안 봤는데 그 쪽 생각보다 약았네요.”
“칭찬 고맙습니다,”
“…칭찬 아니에요.”
“칭찬으로 받아들일 거에요.”
너무나도 당당한 그의 말투에 입술을 비죽이는 것 외에는 저항할 방도가 없다. 뭔가 분하지만 이렇게 되어버린 것 비싼 밥이나 뜯어먹어야지, 하며 어쩔 수 없이 그가 이끄는대로 걸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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